만리장성을 쌓았다. 아득히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었다. 오늘날
12억 인구를 갖고 세계에서 두번째로 넓은 나라,흔히 "잠자는 호랑이"로
불렸던 중국이 서서히 깊은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때로 "황화"로
상징되기도 하는 엄청난 잠재력이 세계무대의 초점으로 떠오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와는 오랜 적대관계에 있었던 중국과의
수교가 마침내 어제 이루어졌다. 북경 조어대의 역사적인 수교장면이 TV에
비쳤을때 당사국은 물론이요. 온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역사란
냉혹한 것,국제정치 무대에선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말이 새삼
폐부를 찌른 순간이었다. 그동안 다져온 북방외교의 마무리라 할까. 가슴
후련한 한편으로는 버려진 "40년 우방"인 대만정부가 아프게 떠오른다.
한.중수교 소식을 들은 타이베이 시민들은 한국대사관에 계란세례를 퍼붓고
태극기를 불사르는등 과격한 시위를 벌였다. 상해임정때부터 언제나
우리를 도왔던 그들이기에 배신감을 느낀것도 이해할만 하다. 그러나
탈이데올로기 탈냉전의 시대를 살자면 우리로서도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뿐이다. 다만 명분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올초 싱가로르의 경우처럼 북경과
대북사이를 오가며 고도의 외교능력을 발휘했던들 최소한 "누이좋고
매부좋고"의 효과쯤은 거둘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현재 한국엔 2만명의
화교가 있다. 이 가운데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2세,3세가 80%에
이른다. 전체의 약 절반이 산동성과 만주지역 출신이다. 앞으로 이들
사이에도 적지않은 갈등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륙계와 대만계.그러나
갑작스런 충격앞에서 화교들은 갈피를 못잡고 있다. 샴페인과 눈물의
차이는 이런 것일까. 자장면집 왕서방과 정다웠던 화교학교 여선생을
뭐라고 달래야 할지 모르겠다. 싯가 5천억원짜리 명동 중국대사관의
운명은 또 어찌될 것인가. 19세기말엽 청나라 원세개가 구입해서 그동안
국민당과 대만정부가 주인이었던 그집을 하루아침에 빼앗기게된 심정은
아마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일게다.
우리정부가 너무 쉽게 옛친구를 버렸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화교들의
진로를 좀더 따뜻이 보살펴주는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