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좋은 것은 한국경제에도 좋다고 말할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기업별 이기주의의 위험이 따를수 있다. 이제 한국경제에 좋은 것은
기업에도 좋다고 앞뒤를 바꿔서 말해야 할 단계인것 같다. 그래야만
이기주의보다는 공동의 이익이 앞에 나서게 된다. 한편 중소기업에 좋은
것은 한국경제에도 좋다고 요즘 유행처럼 말한다. 대기업에 좋지 않은
것은 한국경제에도 좋지 않다고 하는 반논도 만만치 않다.
정부정책의 혼란이나 정책당국과 재계간의 엇갈림도 이에서 연유하는가
싶다. 그러므로 중소기업에 좋은 것은 대기업에도 좋고,대기업에 좋은
것은 중소기업에도 좋으며 더 크게는 한국경제에 좋은 것이야말로
중소기업에도 대기업에도 좋다는 대전제를 확고하게 하는 것이 우리경제의
시급한 과제이다.
정부와 기업,그리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적대관계여서는 안된다는 상식이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인식되지않고 있는 점에 문제가 있다. 하지만
상공부가 분석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관계는 결코 대립구조가 아니라
협력체제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6만9천개의 중소업체중
대기업과 거래를 하고있는 업체비중은 84년의 41.7%에서 90년말에는
63.6%로 늘어난 것이다. 이것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가장 큰 시장이며 그
시장은 중소기업이 부품을 제공하지 않으면 성립될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마치 한국경제의 산업구조조정 이정표를 보는것 같다.
이와같은 현상은 정부의 유도도 있었지만 개방화된 시장의 요구가 더 큰
기능을 한 결과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자금및 기술지원등
협력관계가 심화되는 최근의 추세도 그렇지 않고는 모두가 살아남을수 없는
시장현실 때문이다. 모기업의 납품업체에 대한 자금지원이 91년엔
1조2천8백억원규모로 전년보다 17.7%가 늘어났고 기술지도와
공동기술개발도 확산되고 있다.
한국경제는 현재 비록 어려운 상황이지만 한편에선 산업구조고도화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민간기업의 연구개발투자는 90년 현재 81년보다
10배가 늘어났다. 이중 전기전자분야가 41%,기계금속분야가 33%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에 대하여 자금과
기술지원을 하는 것도 이들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한국경제가 도전하고
있는 주요업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하지 않고는 목표에 이를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수년전의 중국자동차공업 실태를 봐도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시사한다.
중국에는 1백51개의 자동차생산공장이 있었다. 각공장의 연간생산량은
고작 1백대에서 4천대미만이었다. 이는 부품을 자체생산하는 내제율이 60
70%에 이르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경우는 내제율이 20 30%밖에 안되어
월등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부품공급기업과 조립업체간에
협력관계가 원활한것이 일본경제가 미국경제보다 경쟁력이 강한 점이라는
것도 다 아는 일이다.
한일간의 산업구조에도 똑같은 문제를 지적할수 있다. 자국상품을
생산하기위해 상대국에서 수입한 중간재투입비율이 한국은 4.4%로 일본의
0.2%에 비해 22배나 되는것이 결정적 취약점이다. 전기전자 자동차등
우리가 야심을 두고있는 분야가 부품수입의존율이 더 높다는 것이 더욱
문제다. 한국경제의 어려움은 다른 신흥공업국들보다 첨단분야에 더
깊숙이 참여하고 있기때문이라고 볼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 또한 희망이
있다. 이를 뒷받침할 중소기업의 육성이 절실할 뿐이다.
계열화등으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협력체제가 심화되어 있지않은
구조에선 새로운 사업기회란 유흥음식업등 서비스업이나 이미 경쟁력을
잃고있는 단순완제품제조업이 주류를 이룰수밖에 없다. 이것은
산업고도화로 가는 길이 못된다. 우리경제는 벌써 대기업이 재채기를 하면
중소기업이 감기몸살을 앓게되고,중소기업이 감기에 걸리면 대기업이
드러눕게되는(조업중단)구조에 들어서 있다. 이를 심화시켜야 한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적대관계가 아닌 동반자관계라는 점이 정부정책의
밑바탕이 돼야한다. 대기업을 규제하는 것이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길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잠식하려는 것은
더더욱 안된다. 함께 넘어지지 않으려면 서로 부축해야 한다. 정부와
대기업이 협력하여 중소기업이 잘되게 힘껏 끌어주는 것만이 대기업도
사는 길이며 한국경제의 탈출구를 여는 첩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