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대 총선결과가 4년만에 다시 여소야대정국을 초래했다. 집권여당인
민자당이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한 것이다. 선거이전에는 일반적으로
민자당의 과반수이상 의석획득이 무난할 것으로 관측했던 점에서 볼때
개표결과는 이변이 아닐수 없다. 유권자들은 왜 이같은 변화를 선택한
것인가.
정치적으로는 우선 3당합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부정적 심판이라고 보아야
한다. 13대총선에서 유권자들은 각 후보자들이 속한 정당의 정치적 입장을
보고 여건 야건 의원을 뽑은 것인데 이를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합당한것은
일종의 약속위반이었다. 여당의 많은 현역의원이 낙선한것은 이점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수 있다. 여소야대속에서의 국정운용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방법으로서는 합당보다는 정책적 연합을 선택했어야 더 옳았을지 모른다.
경제적 실정이 여당 선거패배의 주요 원인이라는 점을 또한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5공때 만해도 한국은 막대한 무역흑자를 내어 숙원이었던
채권국부상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것이 6공들어서는 무역적자기조로
반전하여 외채가 눈덩이처럼 쌓이고 급기야는 10대채무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한국의 경제신화는 실종되고 선진국에의 꿈은 자꾸 멀어져 갔다.
물가안정이 무너져 서민들의 생활은 더 어려워졌고 해외시장에선
한국상품이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
14대 총선의 주요쟁점이 역대선거와는 달리 민주대 반민주가 아니라
경제문제였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한국국민에게 있어서
경제발전은 결코 포기할수 없는 비원이어서 이를 소홀히 하거나 원활하게
수행하지 못한 집권당은 지지받기 어렵다는 점을 이번 선거가 실증한
셈이다.
경제정책문제를 가장 앞장서서 제기한 국민당이 창당한지 두달도 안되는
신생정당으로서 이번 선거에서 원내교섭단체를 무난히 구성할수 있는
제3당의 위치를 굳힌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국민당의 돌풍이라기
보다는 경제신화를 재창조해야 한다는 국민들 마음의 돌풍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 기회에 국민당에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현대그룹과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여 독자적 새정당의 면모를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국민당의 올바른 위상을 위해서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또한 현대그룹의 국민경제적 역할을 소중히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도
그렇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특히 지적하고 싶은것은 유권자들의 의식이 상당히
성숙됐다는 점이다. 돈가지고 통하던 선거시대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감마저 든다. 그리고 기존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현역의원 77명을 낙선시킨
정치인 물갈이도 값진 소득이다. 국민은 새로운 정치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경청해야 한다.
지역감정이 여러 지역에서 누그러진 점도 이번 선거의 보람으로 기록돼야
한다. 대선과 관련하여 일부지역의 지역감정은 여전했지만 충청 경북 전북
강원지역에서 지역감정이 종전처럼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희망적인 일이다.
이제 앞으로의 정국향방이 문제이다.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국정운용의
어려움도 있을수 있다. 그러나 친여성 무소속당선자를 합치면 여권의원이
과반수가 될수 있고 제3당인 국민당이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잘 수행해
준다면 13대초기의 여소야대상황과는 다를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략보다
국정을 앞세우고 일당지배적 생각만 버린다면 새로운 정국구도는
의정발전에 긍정적 요인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것이 새정치를 바라는
국민들의 마음을 수용하는 길이다.
한가지 염려되는 것은 연말의 대권경쟁을 향하여 지금부터 정치판이 또
요동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국민당등장이라는 새로운 변수와 각정파의
세력판도가 바뀐만큼 그럴 요소는 가중된 셈이다. 대권후보경쟁은
불가피한 과정이지만 우리는 이것이 차분하고 정정당당히 이루어져
정치혼란과 과열이 국정에 지장을 주는 일이 없도록 당부한다.
대권갈등으로 경제를 돌볼 겨를도 없이 정치불안만 조성한다면
대통령선거에서 또 한번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정치권은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새정치풍토를
가꿔야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경제를 다시 일으키는 일이 국민들의 첫째 바람이다. 정치가
경제에 주름살을 주는 일이 더이상 있어서는 안되고 행정조직들도 그동안
선거로 들떴던 분위기를 떨쳐버리고 경제개선에 매진해야 한다. 재계도
선거과정에서 분열상을 보인 불행한 사태를 극복하고 서로 마음을 합쳐
우리경제를 재건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 한국경제가 얼마나
어려운 지경에 있는가를 생각하면 정치놀음으로 경제를 망치는 일은
용납될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