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도시미학적으로 볼때 개성이 없는 것이 그 특징이다. 도읍지가
된지 6백년이나 된 곳인데도 고풍어린 역사성을 찾아 보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거리도 건물도 거의 대부분이 현대화의 물결에 휘말려 버렸다.
그렇다고 현대적인 균형미나 조화미도 찾아 볼수 없다. 하늘로 치솟아
스카이라인을 차단시켜 버린 거대한 콘크리트구조물들,숨 쉴 틈조차 없이
빽빽히 늘어선 빌딩숲,천편일률적인 육면체의 외양에다 색조마저 단조롭기
그지 없는 건물들의 행렬- 그것이 한국의 선구적 도시인 서울의 모습이다.
무미건조한 이 도시의 모습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아파트
모습이다. 일자로 된 육면체의 아파트건물들이 바둑판처럼 행렬을 이룬
단지가 곳곳에 널려 있다. 아파트군락도시라 할까. 어느 아파트나 그
외양만을 보면 그것이 그것이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지적한
"제2물결"의 특징인 규격화와 표준화의 전형을 보는 것 같은 환각에
빠진다.
아파트가 고대로마시대에 처음 지어졌을 때만해도 4 5층짜리였다. 그것이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의 주택형태로 일반화되었다. 로마 파리등 유럽의
대도시에는 그 유산이 아직도 남아 있다.
산업사회의 도래와 더불어 인구의 도시집중화가 급격히 이루어지면서
고층아파트로 그 경향이 바뀌었지만 외양 색조 구조등을 달리해 각기
특색을 지니게 하는 것이 선진 외국들의 일반적 추세다.
파리시는 기존아파트와는 달리 창작성이 있는 설계안을 제시한 업체에만
시공권을 허가한다. 6층밖에 안되는 퐁피두문화센터가 세워질 때도 그
외양이 창의성이 없는 육면체라는 이유로 "파리의 괴물"이라는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도시의 조화미를 추구한다.
싱가포르는 아파트단지를 새로 조성할때 기존단지와 비교해 특징이 없으면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는가하면 브뤼셀시는 건축허가시 신축아파트가
전도시의 기존건물과 조화를 이루느냐를 최우선적인 심의기준으로 삼고
있을 정도다.
한국의 경우는 어떤가. 그동안 기능.편의 위주의 도시계획행정과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행태가 규격화된 주거형태를 양산해 냈다.
금년들어 공공.업무용 빌딩의 경우에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노력이 엿보이고
있으나 유독 아파트만은 이를 외면해왔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가 아파트경관심의기준을 강화하자 업계가 반발하고
나와 귀추가 주목되고있다. 사후약방문격의 조치이지만 "서울의 먼
미래"를 헤아려 규격화된 건축물을 추방하는데 지혜가 모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