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는 왜 왕으로 불리는가. 또 기업들은 왜 저마다 고객제일주의를
표방하고 나서는가. 답은 간단하다. 회사가 쓴 비용을 부담해주는 사람이
소비자요 고객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는 일은 돈(코스트)을 쓰는(발생시키는)
것이다. 원료를 사들이는 것도,사람을 부리는 것도,신문에 광고를 내는
것도,중역들이 외부인사와 술을 마시는 것도 모두가 그렇다. 이 돈을
물어주는 사람들이 소비자이다.
그렇다고 소비자들이 아무회사의 경비나 다 지불해주는 것은 아니다.
A사가 쓴 돈을 물어줄 것인지,아니면 B사의 경비를 부담해 줄 것인지,이는
전적으로 소비자의 뜻에 달려있다. "소비자가 왕"이라든가 "고객제일주의"
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그래서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만 이같은 발림말을 해서는 곤란하다. 구체적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수도 있다. 일본기업들에 있어 구체적
행동은 고객에 만족을 줄수 있는 상품개발로 집약된다.
고객의 만족(CS.Customer Satisfaction)은 물론 상품(서비스)의 질과
애프터서비스 판매원의 태도등 소비자의 종합적 평가로 나타난다.
이중에서 고객의 만족을 효과적으로 끌어내려면 상품이 소비자에게
넘어가기 전에 손을 쓰는게 좋다. "초동단계"가 중요하다는건
기업경영에서도 똑같다.
소니사가 요코하마(횡빈)에 두고있는 CS추진본부 상품테스트실은
초동단계에서 고객의 만족도를 점검하는 곳이다. 이 테스트실엔 발매직전
상태에 있는 컬러 텔레비전 VTR 헤드폰 스테레오등 각종 제품이 진열돼
있다.
제품은 20여명의 사원들이 하나하나 점검한다. "보턴이 너무 작다"는등
소비자의 입장에서 사용해 보고 의견을 정리한다. 품질이나 성능검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사용에 불편한점이 없느냐만을 눈여겨본다.
고객의 불만을 살만한 점은 없느냐만을 체크한다.
테스트실은 조직상으로 제품사업부와 독립돼 있다. 게다가 직원들은
디자인실 쇼룸등에서 차출된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이것저것 눈치를 보지
않아도 좋게시리 돼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들은 상품개발에 직접 간여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소비자의
입장"을 내세워 "시비"를 걸면 사업부는 그대로 좇을수밖에 없다. 아무리
고기술 고품질의 상품이라도 시장에 내놓을수가 없다. "상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모든 것이 끝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백정현일상품 테스트실
계장)
CS라는 말은 쓰지않고 있지만 가오(화왕)사의 소비자 오피니언센터도
고객의 만족을 상품개발의 근본으로 삼고있다. 작년 봄에 설치된 이
센터에선 사원및 사원가족과 거래선으로부터 제품에 관한 품평및 제안을
받는다.
가오사는 또 정보교류부를 별도로 두어 공장견학을 오는 소비자들로부터도
"즉석의견"을 듣는등 "본전"을 빼고 있다. 소비자상담실에선 24시간
제품에 대한 클레임을 받는다.
이렇게 3개부서에서 축적된 소비자정보는 매월 제품사업부로 보내진다.
상품개발 개량에 즉각 활용키 위해서이다. "두발용품 스프레이에서
분무액이 잘나오지 않는다"는 클레임을 받고 노즐을 개량한 적도있다.
결과는 이제품의 매출신장으로 이어졌다. CS상품개발시스템을 운영한
소니사나 가오사가 CS조직을 대폭강화한 것은 설계나 생산기술자가 흔히
갖기쉬운 독선적인 발상에 제동을 거는데 목적이 있다. 소니는 특히
설계기술자의 주장이 드센회사에서 품질과 기술만으로 승부를 걸려는
경향이 짙었었다.
일례로 들수 있는 것이 과거의 VTR전쟁. "기술적으로 앞선 베타방식이
VHS에 참패를 당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객만족"보다는 "자사기술만족"에
너무 집착한 때문이 아니었을까"소니는 아마도 이렇게 분석했을게다.
장사에선 "기술중시"보다 역시 "소비자 중시"로 나가는 쪽이 "한수 위"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CS상품개발의 또 다른 목적은 자사상품의 재구매율을 높이는데 있다.
보급이 한계에 도달한 성숙상품시장에선 재구매율을 끌어 올려야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수있다.
그러나 소비자는 한번 속지 두번 다시 속지는 않는다. 어느 회사의
상품을 써보고 만족하지 못할 경우 대체구입때는 반드시 브랜드를 바꾸는게
소비자의 속성이다.
마쓰시타(송하)전기산업 NEC 닛산자동차 혼다(본전)기연공업등의 CS조직은
대부분 재구매율제고를 겨냥한 것이다. CS를 되뇌면서 소비자 의견을 전부
반영하다 보면 별스런 초대형 히트상품이 나오기는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기존의 고객을 그대로 끌어안고 있다는 것은 곧바로 영업력,나아가
기업력으로 연결될수 있다.
"당신(고객)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상품을 만들테니 우리회사가 쓴
비용을 떨구어 달라"는 요구를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면서 힘을 길러 가는게
일본의 회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