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부장> 한때 구호정치 구호경제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박정희정권때의 일이다.
자고나면 새로운 구호들이 거리거리에 나부낀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구호들은 오늘날의 구호처럼 단순히 구호로만 그친 공허한 것들이
아니었다. 대통령자신에서부터 보통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국민들이 공감할만한 절절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대통령스스로 앞장서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수범을 보이면서 국민을
독려했던 탓인지 그때의 구호들은 상당한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근자에도 몇가지 구호들이 도심지 곳곳에서 눈에띈다. 그중에서도
"과소비억제 사치.낭비풍조추방"이 요즘 구호의 대종을 이룬다. 물가불안
국제수지적자누증으로 국민적 위기감이 고조되는 판국에 사치풍조를
몰아내고 과소비를 없애자는 구호야말로 시의적절한 캠페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사이 우리언론이나 민간기업 각종사회단체가 한목소리로 "과소비척결"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러한 국민적 불안의식에서 비롯된게 아닌가싶다.
그런데 요근래에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의 행태를 보면 "과소비추방"은
구호로만 내걸었지 실제로는 과소비를 조장하는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지금은 물가앙등같은 경제위기에다 태풍 폭우로 엄청난
수재까지 겹쳐 전국적으로 의연금모금이니 복구사업이니해서 민심이
뒤숭숭한때다.
과소비를 선도하는 일부 몰지각한 자산계층을 제외하고는 모든 국민들이
나라의 장래를 우려하는때에 청와대 신축본관준공식에 600명이넘는 전.현직
고위관리들을 불러모아 잔치를 벌였어야만했는지 궁금하다. 물론
청와대본관 신축건물 자체를 문제삼고 싶지는 않다. 새 청와대본관이
민족자존과 관련이 있다는데야 163억원이 아까울리는 없다.
다만 개관기념식에(우천으로 취소되긴 했지만)마당놀이패의 공연이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 묻고싶을 뿐이다.
나라안팎으로 난제가 쌓인 때인만큼 여론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청와대식구끼리만 검소하게 기념식을 갖는게 바람직하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남북한유엔동시가입을 축하한답시고 외교와는 도무지 상관이 없는 향군
변협 교총같은 사회단체대표들을 정부경축사절단으로 유엔에 파견한다는
발상은 낭비성 예산집행의 극치를 보는 것같다.
과소비 호화외유같은 사치성 망국풍조가 사회문제화 되어있는터에 정부가
앞장서서 사회지도층인사들의 유엔외유를 주선하는것은 온당치 못하다.
우리의 유엔가입이 민족적 경사임에는 틀림없지만 소련사태등으로
국제정치질서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유엔총회연설이 "투입될
경비"이상의 성과를 거둘지에 대해서는 비판적시각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가 무슨 세계최초의 유엔회원국이라도 됐단말인가. 161번째로
유엔에 가입한 처지에 한번에 수백만달러가 소요된다는 대통령전세기를
타고 정당대표 정부요인 지도급인사들이 대거 유엔을 방문하는 모습이
다른나라에는 어떻게 비쳐질까도 염려스럽다. 유엔총회연설로도 부족해서
유엔본부까지 몰려간 참에 그 유명한 카네기홀이라도 전세내서
유엔가입축하공연을 계획하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노대통령은 두어달전에도 정상회담차 미국엘 갔었다. 외견상으로만 보면
뻔질나게 미국을 드나드는 셈이다.
현재의 지도층은 광내는데는 장영자못지않은 "큰손"이지만 과소비형
의전행사가 국민들의 사치풍조를 부추긴다는 점은 안중에도 없는듯하다.
그만큼 책임의식도 희박해진 것같다. 불량레미콘으로 신도시아파트를
짓는다해서 나라전체가 시끄러워지고 신축중인 아파트를 헐어버려
국가자원이 통째로 낭비되는데도 과문때문인지 누구한사람 책임지고
물러났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없다.
신도시부실공사현장을 찾아 책임소재를 파악하고 수해현장을 들러
이재민들의 아픔을 함께 고민하는 지도자는 구경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나라에서 수출은 안되고 수입은 급증해서 올해
무역적자가 100억달러에 이를것이라고 아우성쳐도 우리지도자가 수출현장
한번 찾아봤다는 소식을 들은일이 없다. 순외채가 100억달러를 넘어서고
인플레마저 10년만에 최악이라는 8%선을 돌파했는데도 우리지도자가
농수산물거래현장을 둘러보았다는 TV뉴스를 본적도 없다.
우리지도자는 현장확인보다는 오찬이나 베풀면서 초청인사의 견해를 듣고
아랫사람의 보고서를 토대로 국사를 처리하는 통치방식을 선호하는것같다.
6공 3년반동안 우리나라의 정치풍토가 책임의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대신 오찬행정 의전행정같은 소비성통치스타일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2,500년전에 맹자는 여민동락 불여민동락이라는 고사로 선왕을
가르치고있다. 백성이 편할때 궁중에서 음악소리가 들리면 백성도
왕과함께 음악을 즐기지만 백성의 마음이 불편할때 궁중에서 음악소리가
나면 백성들은 왕을 원망한다는 뜻이다.
우리지도자들이 유엔가입경축행사같은 소비성행정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어야하는지 차제에 진지하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