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초로 예정되었던 대북한 쌀 5,000t 반출이 무기연기되고 자칫
무산될는지도 모를 위험에 직면한 것은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며 어떻게 해서든 정부가 신속 원만하게 풀어야 할 사안이다.
정부는 미국이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바 없다고 밝히고
있으나 미측의 제동이 그 직접적인 배경임은 이 문제를 둘러싼 그간의
경우와 움직임으로 미루어 충분히 짐작이 간다.
미농무부와 주한미대사관 관리가 한국측으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느니 혹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이 취해야 할 입장을
현재 연구검토중이라고 말한 사실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에따라 국내여론은 지금 미국측 처사를 통렬히 비난하는 쪽으로
쏠리고 있다.
그러나 비난에는 문제가 없지 않으며 또 비난만으로 해결될 일은
더욱 아니라고 본다.
결코 옳지 못한 처사임이 분명하지만 미국이 제공을 걸게 만든 보다
근원적인 배경을 우선 분명히 가릴 필요가 있다.
그런 연후에 해결을 모색하는게 순서다.
우리쪽에도 문제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남북간에 합의된 물량이 분명 10만t이었다면 미국을 포함한
이해당사국에 처음부터 수량을 밝히고 사전협의를 했어야 옳았다.
국제사회가 남북한간 교역을 아직은 우리측 입장과 달리 어디까지나
국제교역의 일부로 보는 이상 일단은 국제사회규범을 의식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취했어야 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잉여농산물처리원칙에서
1,000t이상의 쌀을 무상공여 또는 장기대여할 경우 이해당사국과 사전
협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은 16조에서
수출보조금지급 특히 1차산품의 덤핑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문제는 결코 남북한간 거래의 성격규정에 귀착된다.
그것을 국제교역으로 보는 국제사회의 시각이 바뀌지 않는한 비단
쌀문제뿐아니라 모든 상품교류에 문제가 제기될 소지가 있다.
무관세거래는 가트의 최혜국대우규정과 상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체없이 남북교역을 통일전의 동서독예에 따라 내국거래
(internal trade)로 공인받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서독은 57년 로마조약 부속의정서에서 유럽경제공동체(EEC) 회원국으로부터
그와같은 공인을 받은 바 있으며 이를 계기로 별 제약없이 동서독간
거래를 발전시켜 왔다.
우리역시 차제에 같은 공인을 국제사회로부터 받아내야 한다.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
더구나 미국은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에 깊이 관련된 우방이므로 서로
진지하게 협의하면 쌀반출문제에 대한 정치적 타결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