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패망직전 소위 천황의 임시거처와 군최고지휘사령부 마련을 목적
으로 한국인 노무자들을 강제징용, 극비리에 "마쓰시로대본영"을 지하에
건설하고 있었으며 이 작업에 차출된 한국인들의 상당수는 아직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어 당시 군국주의 일본의 잔학성과 한낱 전쟁수행의 도구에
불과했던 한국인들이 겪었던 고통이 어떠했는가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 모습 드러내며 한국인 희생 알려져 ***
이같은 사실은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도 베일에 가려져 있던 마쓰시로
대본영의 지하터널입구가 지난 86년 일본의 한 지방고교 탐사반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후 이를 추적해온 몇몇 양식있는 일본인들의 노력으로 그
전모가 속속 드러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으로 국내에서는 지난해
8월 박창희교수(외대용인캠퍼스 도서관장)팀이 직접 현지를 답사하기도 했다.
***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로 문제의 제2황궁 ***
문제의 마쓰시로 대본영은 일본이 패색이 짙던 1944년 11월11일 천황의
거처를 옮기기 위해 나가노시 마쓰시로읍에 건설하던 임시황궁으로 당시
일본은 조선인노무자 7,000여명을 혹사사키며 패망 하루전까지 작업을
계속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3개의 거대한 야산지하에 구축하던 이 대본영은 지금까지의 발굴결과 지하
통로의 길이만 장장 13km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미로처럼 얽혀있는
지하궁정과 군사시설용 갱도안에는 한국인 노무자들의 낙서등 당시 처참했던
상황을 짐작케 하는 유류품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특히 이같은 대규모공사는 현재의 공법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콤푸레샤, 착암기등은 있었으나 작업을 비밀리에 해야 하는 이유때문에
전적으로 곡괭이등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일본육군성의 입안으로 추진됐던 대본영건설작업은 당시 이 공사에 차출됐던
일본인들에게조차도 단지 "마쓰시로창고 건설공사"로만 알려졌을뿐 극비에
붙여졌으며 패망과 함께 공사가 중단된 이후에도 줄돋 은폐돼 왔다는 것.
패전으로 공사가 중단되기전 이미 천황침실등은 완성단계였었던 이 대본영
건설에는 강제징용으로 끌여온 한국인 7,000여명이 가장 공사가 힘든 막장에
투입돼 혹사당하다 이중 상당수가 갱도사고등으로 숨지거나 부상했다고
생존자들은 증언하고 있으나 당시 관련서류의 대부분이 소각 또는 없어져
이들의 생사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본영공사에 동원됐던 생존자들중 특히 천황침실공사에 관여했던 한국인들은
공사가 끝난후 어디론가 끌려가 돌아 오지 않았으며 혹독한 고문과 중노동,
굶주림등에 시달려 어떤날에는 하루 최고 6명까지 한국인이 죽어 화장됐다고
증언하고 있다.
실제 대본영공사장 주변에는 한국인근로자들이 사용했던 조잡한 숙소가
아직도 남아 있으며 이들의 고혼아 잠들어 있는 묘지가 무성한 잡초더미속에
아무도 돌보는 사람없이 묻혀 있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인 노무자중의 한사람으로 "마쓰시로 대본영공사증인"이기도 한
재일동포 강영한씨는 "마쓰시로 대본영공사를 맨처음 시작할때 산중턱을
뚫기위해 색칠을 하고 갱목을 박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며 "이 작업을 하고
있는중에 한국으로부터 강제징용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강씨는 "한국인들은 연락선으로 시모노세키까지 와 그곳에서 다시
마쓰시로까지 화물열차를 탔다"고 밝히고 "객차는 마치 사과상자와 같이
헌번 들어가면 밖을 내다볼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 아직 생사 모르는 사람 너무 많아 ***
지난해 8월2일 마쓰시로 현지를 답사한 박교수는 "갱도안의 낙서등으로
미루어 볼때 한국인들이 얼마나 혹독한 고통에 시달렸는지 잘 알수 있었으나
당시를 증언할 생존자들이 강씨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많지 않은데다
관련기록이 소멸돼 우리동포들의 희생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고 밝히고
"우리일행을 지하갱도에 안내했던 한 일본인은 천황침실공사에 투입됐던
한국인들이 20-30명씩 무더기로 사라지기도 했다고 말했으나 국내에서는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채 역사의 뒷장으로 묻혀가고 있다"고 안타까와
했다.
박교수는 또 "일본내에서는 대본영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마쓰시로 대본영을 ''평화공원''으로 보존, 후세에 반성의 기회를
삼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각에서 일고 있다"면서 "당시 희생된 한국인들을
위한 위령탑조차 하나 세우지 않고 있는 일본인의 비인도적인 처사와
한국인의 무관심에 분노와 비애를 느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