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원및 노동계의 침투, 세력확산을 기도
<>88.12 중순경 민자통사무실에서 이현수/이종린등이 회합 행동력을 갖춘
하부조직의 확대를 위해
- 각 대학 총학생회장을 조직원으로 포섭하고
- 노동계는 전국의 350만 일용노조원을 민자통의 외곽지원세력으로
양성시키기로 결정한 후
<>대외협력위원장 이천재를 통해
- 89.1부터 학원가 투쟁선도조직인 전대협, 서총련 핵심간부인 김남훈
(전 한양대총학생회장) 정명수(전 연대총학생회장) 오영식(전 고대총학생
회장) 이신규(전 시립대총학생회장) 여택수(전 고대총학생회부회장) 조원호
(전 시립대부학생회장)등을 접촉 학원가에 민자통을 결성토록 교사.
- 89.9말 삼성제약 노사분규시 이천재가 노조를 방문, 성금을 전달하면서
"끝까지 투쟁하여 승리를 쟁취하자"고 선동후 민자통의 발기취지문 선언문
강령등을 제공
- 89.4.2 "민자통"중앙위원 이현수등 10여명이 동국대에서 개최된
"현대중공업 노조에 대한 강제진압 규탄대회"에 참가, 민자통 피켓을 들고
시위
- 89.4.28 이현수가 "세계노동절 100주년기념 한국노동자대회 준비위원회"
준비위원으로 가담하여 연대에서 개최된 노동자대회 전야제에 참석
- 89.6 이천재가 목수 청소부 지게꾼등 일용노동자로 구성된 "일용노조
연합회"지도위원으로 가담, "일용노조탄압 규탄대회"를 선동케 하는등
학원가및 노동계에 침투 민자통의 세력확산을 기도.
(3)전민련등 각 재야단체와의 연계투쟁 모색
<>88.10말 민통련 민청련등 재야 15개 단체 연합으로 결성된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민주단체협의회"에 참석 "북을 적으로 규정, 적대적
개념에 기초한 국보법 폐지및 주한미군철수"등 항의
<>1988.11.27 시내 중구 명동소재 YWCA 강당에서 약 200여명 참석리
서울민중민주운동협의회(공동의장 이재오/김희선등)주최로 개최된 "반민주
악법 철폐를 위한 집회"에 이종린/박창균/전창일과 참석
"반 민주악법 철폐를 위한 공동결의문"을 제하로
- 국가보안법 철폐하여 사상/양심의 자유 확보하자는등 내용의 성명서를
민자통등 6개 재야단체 공동명의로 발표
<>1988.12 중순경 민통련 사무실에서 문익환을 접촉 문익환에게 "전민련"에
민자통이 가입할수 있도록 부탁후
89.2초순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 식당에서 이종린(대의원총회의장) 전창일
(공동의장)등 2명이 문익환을 접촉 민자통 상임의장직을 맡아줄 것을 권유
<>89.2.21 이규영/이천재/이종린등 민자통 핵심인물 5명이 박형규/여익구등
재야인물 30여명 참석리 명동성당입구에서 개최된 "사회안정법폐지 촉구
대회"에 참석후 시위에 적극 가담
<>89.3.1 민자통 핵심간부인사 이규영/이종린/전창일/이천재등 4명은
전민련 고문인 계훈제/박형규등 60여명과 전민련 범민족대회 남북실무회의에
참석키 위해 판문점으로 향하던중 고양군 벽제읍 내유리 검문소에서 경찰의
저지로 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