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이 많은 대내외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며 21일자 신문에 반김사건과
북한정권의 문제점들을 다음과 같이 분석, 보도했다.
폐쇄적인 북한사회가 외부에 문을 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평양과
북경에는 김일성 44년 통치에 도전하는 갖가지 루머들이 나돌고 있다.
이미 보도된 일이기는 하지만 2년전 5월 김이 중국방문을 마치고 국경
지대인 신의주에서 3일간 체류했을때 일단의 장교들이 쿠데타를 감행했는데
김을 방문한 장교들이 김에게 총을 쏘았으나 경호원이 달려들어 가로막는
바람에 암살에 실패하고 이 사건과 관련해 그후 5명의 장성들이 도보로
국경을 건너 중국에 피신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서 86년에는 김이 탄 열차가 습격을 받는 일도 있었다는 남한쪽의
주장도 있다.
또 87년12월에는 탄약을 적재한 열차의 폭발사건으로 120명이 죽인 일이
있었는데 김의 권력상속에 대한 반대자들이 저지른 것이라고 서방언론들은
분석하기도 했었다.
평양의 믿을 만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지난해 5월 동북쪽의 해안도시인
함흥에서 만원열차가 폭발, 300명이 죽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것도 앞서의
사건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얘기되고 있다.
이 사건이 터진후 북한당국은 군대를 동원해 시가를 봉쇄하고 3일간
통금을 실시하면서 남한의 소행이라고 비난했다는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북한에 반대세력이 없으나 서방외교관들은 강력한 군부의
일부에서는 중국이나 소련처럼 정치/경제개혁이 단행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의 경제력은 남한에 비해 뒤지고 있으나 김일성은 강경파이며 군
최고책임자인 오진우의 주장대로 개혁에 반대하고 있다.
김은 87년에 외자와 관광객유치를 위해 약간의 양보를 하기는 했으나
외교관들은 아직 기본적인 변화가 없으며 경제는 더 악화되고 있다고
보고있다.
외교적으로 북한은 일련의 국제테러에 연루되어 고립을 당하고 있으며
외채상환 불능사건으로 오스트리아와 스웨덴외교대표들이 평양에서
철수한후 이제는 서방세계에서는 핀란드만이 대표를 상주시키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도 평양과의 외교관계를 격하시켰으며 지난86년과
88년에 일어난 심각한 충돌이 있은후 학생파견도 중단하고 있다.
작년의 경우 약 50명의 아프리카 학생들이 형편없는 음식과 강압적인
사상교육 그리고 그들의 우월한 생활수준에 분개한 현지주민들의 공격에
항의하여 데모행진을 벌이자 군대가 충돌하여 이를 막았다고 한다.
중국과의 관계도 긴장상태에 있다.
중국은 대북한교역에서 부분적으로 국제통화를 요구함으로써 무역분쟁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고 북한은 중국의 대미관계개선을 배신행위라고
보고 있다.
또다른 외교적 타격으로서는 남한의 대헝가리 수교와 대소, 폴란드 관계
개선을 들수 있다.
식품부족사태가 가중되고 있는데도 국내의 귀중한 자원이 그의 아들인
김정일의 지시로 공항이나 고속도로, 거대한 체육시설 건설에 투입되고
있다.
한해 관광객이 3만명에 불과한데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105층짜리 호텔을
비롯, 호사스런 호텔들을 신축하고 있다.
외교소식통들은 김일성의 아들이 권력을 상속받는데 대해 집권층 내부는
물론, 중국의 반대도 거세기때문에 승계가 자꾸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군대도 갔다오지 않고 또 플레이보이라는 평판을 갖고 있다.
김정일은 82년에 권력승계작업과 관련하여 6,000-1만5,000명의 반대파를
숙청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