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AI 대전환' 시대에 한국이 갈 길

美 빅테크와 정면 대결은 무모해
제조업 강국 기반 특화전략 필요

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前 중소기업청장
인공지능(AI)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증기기관과 전기, 컴퓨터가 산업혁명을 주도했다면 최근 급부상하는 AI는 인쇄술과 인터넷에 이어 인류의 지식혁명을 이끌고 있다. AI가 우리 생활과 사회, 산업 등 인류의 삶을 총체적으로 바꿀 전망이다.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는 과장이나, AI를 잘 쓰는 사람이 못 쓰는 사람을 대체할 것은 확실하다. 더 나아가 AI를 잘 활용하는 기업·국가가 그렇지 않은 기업·국가를 대체할 것이다. AI 활용에 국력을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앞다퉈 발표하는 AI 기술혁신 속도는 네이버, LG 같은 우리 AI 기업들로서는 따라잡기 벅차다. 기술만이 아니라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하드웨어 투자에 수십조원을 쏟아붓는 소위 ‘쩐(錢)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미국 빅테크와의 전면 대결은 무모하다.우리의 강점과 목적을 살리는 현명한 전략이 절실하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쏟아내는 AI 모델, 특히 종속 위험이 적은 오픈소스 기반 AI 모델들과 우리 토종 AI 모델로 혼합 대응하고 그 위에서 AI 활용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 유리한 AI 전략의 실마리는 디지털·AI 대전환의 기본에서 찾아야 한다. 먼저 AI 대전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중요하다. 연결, 데이터, AI로 구성된 디지털 대전환(DX)은 AI 대전환이 핵심이고 종착점이다. 이 둘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인 것이다. 데이터 없는 AI는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 우리 전략의 출발점이다. 즉, 국가적 AI 활용 전략은 현명한 데이터 전략에 달려 있다.

우리에게 특화된 데이터 전략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은 자국 AI 플랫폼을 내세워 자국은 물론 글로벌 데이터를 장악해가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이에 대항해 데이터 주권 확보라는 명분으로 EU 차원의 데이터 생태계 구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도 정부 주도로 데이터 댐, 데이터 레이크 사업 등 데이터 구축 사업을 추진해왔으나 여전히 개선할 점이 많다. 데이터를 모으고 AI가 데이터를 가공·분석해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뜻인데 현실성이 떨어진다. 미국, EU 등 선도국은 방향이 반대다. AI 활용 목적 및 대상을 먼저 정하고 이에 필요한 데이터를 모은다. 사용 사례(use case)라고 불리는 활용 대상을 찾기 위해 정부 주도보다 기업 주도로 추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AI 활용 대상으로 우선 한국 경제의 근간인 제조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강점인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다양한 제조 역량에 AI를 접목해 초격차 제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소멸해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축적된 제조 노하우 및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켜 경쟁력 제고와 신(新)가치 창출로 재도약이 가능하다. AI 적용을 통해 제품의 기능 혁신은 물론 제조 프로세스 전반에서 생산성 및 효율의 획기적 향상을 이룰 수 있다.

이를 위한 국가적 제조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하는 사업이 시급하다. AI가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 구조의 체계화 및 표준화가 핵심이다. EU의 자동차산업에 특화한 ‘카테나-X’와 같이 제조 산업별 특화 데이터 사업도 고려 대상이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 주권 확보라는 공통 목적을 가지고 있는 유럽, 일본 등 제조 강국과의 국제 협력 강화도 시급하다. AI 기반 제조업 초격차 전략을 바탕으로 서비스산업 등 타 분야로 확산하는 대한민국 특화 AI 전략이 우리의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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