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한국인은 원래 투기적인가

국내 첫 증권 파동은 1962년에 일어났다. 주식회사 육성이 포함된 첫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나오면서 주가가 폭등했다. 시골에서 논밭을 판 돈이 대거 유입됐다. 하지만 거물급 투기세력이 결제를 이행하지 못하면서 난리가 났다. 6개월 만에 80배 오른 주식이 1년 뒤 거의 휴지조각이 됐다. 전 재산을 날린 개인투자자 여럿이 자살하면서 증권시장 불신의 씨앗이 잉태됐다. 1980년대 말 종합주가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1000포인트를 돌파했을 때도 뒤늦게 상투를 잡은 투자자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상승 욕구가 강했던 탓일까. 한국 시장의 쏠림은 유난했다. 1980년대 전후로는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부렸다. 1969년 12월 제3한강교(한남대교)가 완공된 이후 강남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부동산으로 떼돈을 번 사람들이 나왔다. 목 좋은 곳을 거머쥔 이른바 ‘복부인’들이 활개를 치고 다녔다. 외환위기 이후엔 선물·옵션의 시간이었다. 쌈짓돈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에 개인들이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시장이 노름판으로 변해가고 파국도 예견돼 있었지만 증권거래소는 2002년 5월 거래량 세계 1위 달성을 축하하는 기념행사를 열기도 했다. 코스피200 옵션의 거래량이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 전체 거래량을 웃돌 때도 있었다. 그 비슷한 상황이 암호화폐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 1분기 전 세계 시장에서 원화 거래량이 달러화 거래량을 처음으로 추월한 것이다. 그런데 암호화폐 시장은 세계적으로 연결돼 있어 파생시장처럼 우리만 규제할 수도 없다. 몇 년 전 금융당국이 청년들의 코인 투자를 규제하려다가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질타를 받은 적도 있다.

주식 대신 상장지수펀드(ETF), 국내보다는 해외시장 투자가 늘어나는 추세지만 한국인 스타일은 여전히 투기적인 측면이 많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개인투자 비중도 압도적으로 높다. 말로는 중장기 수익을 노린다고 하면서도 실제론 단타에 골몰하는 경우가 많다. ‘한방’ ‘대박’이라는 투기적 용어가 젊은이들 사이에 일반 용어로 자리를 잡은 것도 이런 세태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박준동 논설위원 jdpow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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