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위험한 밸류업 프로그램

밸류업 공시의 부작용 고민해야
중장기목표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민사소송 등 기업 부담 커져
'장밋빛 전망'은 투자자 피해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하려면
기업과 자본시장 노력 필요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前 증권학회 회장
정부가 한국 기업의 가치를 국제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상장사가 자사 기업가치를 직접 평가하고,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을 스스로 제시한다는 내용이며, 미래 지향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기존 공시와는 성격이 다르다. 주가순자산비율(PBR), 주가수익비율(PER), 자기자본이익률(ROE), 배당성향, 배당수익률과 같은 재무 비율뿐 아니라 지배구조와 같은 비재무지표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경영 여건이 급격하게 바뀌어 목표 변경이 불가피하다면 정정공시를 통해 목표를 수정, 보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기업들이 밸류업 프로그램에서 제시하는 내용을 공시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다.

가이드라인에는 기업개요, 현황진단, 목표설정, 계획수립, 이행평가, 소통 등 목차별 작성 방법을 제시했다. 이 중 기업개요는 업종, 주요 제품과 서비스, 연혁 등 기본적인 정보를 기재하도록 해 현재의 사업보고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을 보고하도록 했다. 현황진단은 기업의 사업 현황에 대해 시장환경, 경쟁우위요소, 리스크 등을 포함한 입체적 진단을 실시하고 다양한 재무, 비재무지표 중 중장기적인 가치 제고 목적에 부합하는 핵심 지표를 선정해 분석하는 내용이다. 현황진단에 포함되는 비재무지표의 경우 기존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포함되는 내용으로서 시장 참여자들이 관심 있어 하는 모자회사 중복 상장 이슈나 지배주주의 비상장 개인회사 보유 이슈 등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사업보고서에는 포함하지 못한 내용이 포함되므로 개선점이라고 볼 수 있다.문제는 목표설정과 계획수립 등의 내용이다. 목표설정은 핵심 지표 관련 중장기적인 목표를 제시하는 단계로서 목표 또는 계획을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다. 불성실공시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기업의 우려는 거래소의 면책제도에 의해 해소될 수 있다고 하나 투자자들에 대한 민사상 책임과 그에 따른 소송으로 인한 사업의 어려움은 누구도 해소해 줄 수 없다는 점이다.

또는 일부 부도덕한 기업인은 이런 공시를 기회로 삼아 의도적으로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제시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 많은 문제가 됐던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상장처럼 장밋빛 전망을 퍼뜨리면서 주가를 올리지만 실제로는 근거가 부족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팩 합병은 비교적 느슨한 검증 절차로 인해 기업들이 미래 영업실적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반영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금융감독원이 2010년부터 2023년까지 스팩으로 상장한 139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적 추정치와 실제를 분석한 결과 10개 회사 중 8개가 미래 영업실적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추정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스팩 상장 후 5년이 경과한 기업 48곳 중 영업이익 추정치를 달성한 기업은 4곳에 불과했고, 1000억원이 넘는 매출이 예상된다고 했지만 매출이 전무한 사례도 있었다. 국내 기업들의 자율적인 목표설정과 계획수립이 비정상적인 용도로 이용될 경우 기업가치가 고평가되면 결국 투자자 피해로 귀결될 수 있다.

또한 현재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모두 기업의 잘못은 아니다. 지난 10년간 코스피 연평균 수익률이 고작 1.9%라는 JP모간자산운용의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코스피 상장기업들의 ROE는 주식 수익률보다 높은 연평균 3% 이상이었다. 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시장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경우 기업 내부에서 경영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인 주요성과지표(KPI)를 자발적으로 공시해 기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성과 기준을 시장에 전달하지만, 동시에 자본시장의 애널리스트들도 기업의 성장 전략을 제시하는 등 자본시장의 투자자들이 기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현재 우리나라에 상장된 2000개 이상의 기업 중 애널리스트 리포트가 정기적으로 발간되는 기업의 수가 500개도 안 되는 현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한다고 볼 수 없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자본시장을 성숙하게 만드는 데도 신경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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