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필 지휘 첫 데뷔 김은선, 치밀하고도 강하게 밀어붙였다

[리뷰] 지휘자 김은선 뉴욕필 데뷔 22일 공연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 코로나로 4년 만에 성사
올 초 뉴욕은 유난히 특별하다. 평범한 유학생이었던 바리톤 백석종은 팬데믹을 기점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스타 테너가 되었다. 그는 이달 28일을 시작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투란도트에 출연해 12회에 걸쳐 칼라프 왕자를 노래한다. 지난 2월 10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의 뉴욕필하모닉 데뷔 공연이 3일 동안 열렸다. 그리고 20일에는 클라라 주미 강이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뉴욕필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며 뉴욕 청중을 사로잡았다.

이튿날은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카네기홀 ‘건반의 거장’ 시리즈에 초청되어 쇼팽의 작품들로 데뷔 리사이틀을 가졌다. 까칠한 평론으로 소문난 자카리 울프(Zachary Woolfe)는 뉴욕타임스 리뷰 기사를 통해 그의 연주를 극찬했다. 그리고 22일부터 24일까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음악감독 김은선의 뉴욕필의 데뷔 공연이 열렸다. 그의 뉴욕필 데뷔는 지난 2020년 연말로 예정되었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취소된 이후 4년 만에 성사되었다.
ⓒBrandon Patoc
첫 곡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는 쉽게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은선은 에너지가 폭발하는 몇 구간을 제외하고는 ‘힘겨루기’라는 표현이 떠오를 만큼 강하게 밀어붙였다. 지휘자의 비트를 따라오는 트럼펫군과 이에 저항하는 다른 악기들 사이에 균열이 생기는 곳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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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 좋은 이웃집 할아버지 인상의 이매뉴얼 액스는 안데르스 힐보리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뉴욕 초연했다.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스웨덴 출신의 작곡가 힐보리는 팝 음악을 했던 이력을 가졌다. 그는 핀란드 출신의 지휘자들과 많은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 작품 역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에사페카 살로넨의 위촉으로 탄생했고,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뉴욕 필하모닉, 서울시향 등과 같은 주요 악단이 그의 음악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 곡은 소위 유럽 현대 작곡가들의 ‘아방가르드’ 작품과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오히려 전통적 조성 체계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낮다. 여기에 힐보리는 마치 반투명 패널을 그때그때 교체하듯 음의 레이어를 다르게 쌓아 올려 악곡의 컬러 변화를 시도했고, 그 위로 빠르고 불규칙한 음을 흩뿌리는 스플래터 기법처럼 곡을 전개했는데, 그 주인공은 피아노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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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교향곡 3번은 여러 그림을 이어 붙여가며 전체 규모를 키우는 작품이다. 하나에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운 조각 그림이 등장한다. 그렇게 쉴 새 없이 탄생하는 새로운 조합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문제는, 맞물려 있는 파편들이 때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 어색함에 저항하지 못하는 청중들은 결국 길을 잃는다. 그리고 혼돈이 차오르는 이 지점에 지휘자의 역량이 오롯이 드러난다.

뉴욕 필하모닉의 플루트 단원 손유빈과 바이올린 단원 박수현은 김은선의 리허설이 인상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연륜이 있는 지휘자들 조차 뉴욕필 데뷔에는 긴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은선은 좋은 귀를 가졌고, 필요한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 효율적으로 연습을 이끌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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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버를로우 상(Barlow Prize)을 받은 작곡가 김택수는 김은선의 장점 중에 치밀함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 그가 변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빈틈없이 준비하는 지휘자라는 점은 연주를 통해 드러난다고 말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3번은 2번으로부터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 그래서인지 수작임에도 불구하고 2번에 비해 연주가 많이 되지 않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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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뉴욕필의 연주도 2017년 이후 7년 만의 무대였다. 자주 다루는 곡이 아닌 만큼 오케스트라가 갖는 긴장과 부담도 커진다. 김은선의 치밀함은 이 작품에서 더 선명했다.

뉴욕=김동민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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