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은 반유대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두고 또 홍역을 치렀다

[arte] 변현주의 Why Berlin
- 예술 표현의 자유에 한계는 없는가
예술 표현의 자유에 한계는 없는가? 아니면 사회적 관습과 윤리의 문제 등을 고려해 제한을 두어야 하는가? 공적 재원으로 예술을 지원하는 주체가 표현의 자유 범위를 규정하는 것이 정당한가?

이 같은 예술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의는 역사적으로 반복되어온 주제이고, 특히 오늘날 많은 예술 사업이 공공 재원과 지원금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공공성과 표현의 자유 보장의 문제는 서로 대치되며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자유와 다양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베를린에서도 최근 예술 표현의 자유와 공적 재원의 지원 조건을 둘러싸고 커다란 갈등이 있었다.기존 역사를 다시 읽고 쓰고자 하는 동시대 미술의 국제적 동향을 반영하듯 베를린 미술계에서 현재 주로 다뤄지는 주제는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LGBTQ(성소수자) 및 BIPOC(백인 이외 인종)의 동등한 권리 등 과거 배제되었던 존재들을 재조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의 정치적 발언 및 표현이 비교적 자유로운 베를린에서도 금기시되는 것이 있는데, 이는 바로 반유대주의이다.
카셀 도큐멘타가 열리는 프리드리치아눔 미술관 전경. Photo by Hyunjoo Byeon.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주의하려는 입장은 때로는 과도한 조치로 이어져 반유대주의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관련된 이슈에 대한 모든 코멘트와 표현을 제한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례로 지난 2022년 인도네시아 출신 컬렉티브 루앙루파가 기획한 도큐멘타에서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묘사한 타링 파디(Taring Padi)의 그림이 전시 시작 3일 후 철거되고, 그 여파로 계획되었던 포럼 등 이벤트가 연달아 취소되었던 일은 이미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되었다. 탈식민주의 및 퀴어와 페미니스트, 이민자 문제 등을 주로 다루는 베를린의 문화기관 ‘오유언(Oyoun)’은 2025년까지 받기로 예정된 공적 지원이 중단되는 일을 겪었다. ‘중동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Jewish Voice for a Just Peace in the Middle East)’란 단체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논하기 위해 기획한 <애도화 희망>이란 이벤트 개최를 취소하라는 베를린 상원의 요청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무슬림의 삶을 촬영한 사진작가 라파엘 말릭(Raphaël Malik)의 베를린에서의 사진 전시가 취소되거나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 열리기로 예정되었던 팔레스타인 출신 소설가 아다니아 시블리(Adania Shibli)의 수상 행사가 취소되는 일 등이 있었다.
2023년 11월 23일 ‘오유언’ 인스타그램에 게재된 포스트.
이처럼 이스라엘에 관한 그 어떠한 발언도 용납되지 않는 듯한 분위기와 캔슬 컬처가 만연한 상황에서 독일 예술원(Akademie der Künste)의 디렉터 야닌 메어아펠(Jeanine Meerapfel)은 ‘예술적 자유의 옹호’라는 공개 항의서를 2023년 12월 15일 발표했다. 예술의 자유에 대한 책임은 예술에 있으며, 성별·혈통·인종·언어·출신국가 및 종교적·정치적 발언으로 인해 특혜나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하기에 누구나 의견을 피력할 자유 권리가 있다는 것이 항의서 내용의 핵심이다.

그러나 상황이 나아지는 대신, 2024년 1월 4일 베를린 상원의원 요 치알로(Joe Chialo)는 ‘인종차별적, 반유대주의적, 반동성애공포증적, 차별적 표현’은 공공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는 조항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 조항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해야만 지원금 수령이 가능한 강제적 조건에 4100명 이상의 베를린의 예술가 및 문화 종사자가 조항에 반대하며 서명한 공개 항의서를 곧이어 발표했다. 항의서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은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 협회(IHRA)가 새로 정의한 반유대주의 개념에 따라야 하는 것은 부당하고, 정당한 비판마저 막는다는 점에서 조항을 비판하였다. 이 같은 격렬한 항의에 치알로 의원은 1월 22일 해당 조항을 취소한다고 발표했고 일단 갈등은 급하게 봉합된 모양새이다.
요 치알로 베를린 상원의원. Sandro Halank,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반유대주의는 반드시 사라져야 할 차별이다. 그러나 반유대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또 다른 민족을 차별하거나 이스라엘에 대한 그 어떠한 의견과 주장을 금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고, 이를 이용해 공적 재원의 지원 여부를 통제하며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예술가는 어떠한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더라도 그의 생각과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예술적 표현의 자유 및 권리를 보장 받아야 하고, 만약 예술을 특정한 이데올로기의 선전과 선동의 도구로서 이용한다면 이는 예술의 시스템 내에서 비판 받고 자정될 것이다. 그것이 예술이 행동주의와는 다름을 드러내는 지점으로서, 시대에 대한 예술가의 생각을 반영하는 동시에 예술적 실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탐구와 노력이 깃든 예술이, 단순한 도구로서 이용된 작업보다 그 가치를 인정 받고 오랫동안 향유되는 이유라 생각한다. 조항의 철회로 베를린에서의 이번 갈등은 우선 일단락된 듯 보인다. 하지만 전 세계적 경제 침체와 우경화의 흐름 속에서 또 다른 갈등이 언제 생길지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역사에서 배운 교훈을 되새길 수 있도록 예술적 표현의 자유 및 자유로운 비판과 발언을 보장하려 노력하는 베를린 미술계와 시민들을 보며 미래는 어둡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극우 성향의 독일을위한대안당(AfD)에 반대하는 시위를 위해 모인 10만 여명의 독일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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