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무대편성표만 봐도 연주회가 갈 길이 보인다

[arte] 이동조의 나는 무대감독입니다
전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가 찾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매일매일 다른 음악회가 펼쳐지는 이곳 무대에는 그 오케스트라들만의 개성이 담긴 무대편성표가 차곡차곡 쌓인다. 그 다양한 편성표들을 바라보며 ‘통일성이 있는 국제 규격의 편성표는 없나?’ 이런 생각이 지나고, ‘그럼 그 무수한 편성표들을 일관되게 바라볼 수 있는 어떤 기준은 있을까?’로 생각이 옮겨간다.

객석과 가장 가까운 현악기, 거의 모든 오케스트라가 일정한 높이를 주며 차곡차곡 오르는 목관악기, 금관악기, 타악기 등. 음악회 무대를 바라보며 어떻게 혼자만의 재미를 찾을 수 있을지 점점 궁금해졌다. 현악기의 구성단위, 목관악기의 구성단위, 이들 상호 간 믹스를 바라보는 기준을 스스로 지니게 되는 일은, 지금에 와서는 음악회 무대를 바라보는 가장 기본적인 재미 중 하나가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1] ‘풀트’와 ‘___ 관’ /이미지 제공 = 이해빈
현악기를 구성하는 기본단위 - < Pult >
악보를 놓을 수 있는 보면대 하나와 의자 2개를 더하면 그것이 하나의 완전한 풀트를 이룬다. 의자가 하나만 있는 불완전한 경우는 반풀트 또는 1/2 풀트라 부른다. 일반적으로 다섯 군(群)으로 나누어지는 현악기를 구성하는 모든 연주자는 마치 삼각형처럼 생긴 구성단위인 풀트로 쪼개질 수 있고, 기본 네 개의 목관악기 수와 함께 연동하며 관악기와 타악기가 등장하는 그 바로 앞선까지 클래식 콘서트 무대를 꾸민다.

목관악기를 구성하는 기본단위 - < _관 >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볼 때, 오케스트라 정중앙을 차지하고 돌아가며 자리한 네 개의 목관악기인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각각의 수가, “음, 오늘 공연은 2관(3관 또는 4관)이네”, 이 말 한마디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이다. 이 목관 네 개의 악기를 2개씩 사용하는 작품은 2관, 6개씩 사용하는 작품은 6관. 6관 작품의 경우, 이미 이 네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만 24명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현의 규모 역시 연동하여 결정되고.

2관/7-6-5-4-3, 3관/8-7-6-5-4, 4관/9-8-7-6-5.
하강하는 숫자는 순서대로, 1st Violin - 2nd Violin- Viola – Cello - Contrabass의 풀트수작품의 목관규모와 어울려 현악기들 풀트의 숫자가 하나씩 하강하는 현악기 규모를 기준으로 생각하라는 것을 일을 처음 시작할 즈음 배웠다. 매일매일 다른 음악회가 진행되는 콘서트홀 무대에 이 배움을 일률적이며 절대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금관악기와 타악기 역시 더해지면 또 다른 모습이 되고, 성악가라도 앞에 서는 무대가 되면 현악기들 풀트의 수가 조정되는 음악회도 있고, 합창석을 가득 메운 합창단과 함께 하는 오케스트라의 1st Violin 펄트수가 11 또는 12까지 확장되는 날들 또한 있다.

모든 클래식 음악의 오케스트라 공연은 목관악기-현악기-금관악기-타악기 간 다양한 믹스로 만들어진다. 작곡자가 품은 첫 의도는 지휘자 혹은 오케스트라에 의해 다소간 변형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모든 음악가는 결국 자신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소리를 이끌어 내기 위한 최적의 방법을 찾아 그것을 무대 위에 구현하는 것이라 늘 생각한다.

공연의 편성표를 바라보는 일

2022년 12월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찾았던 마에스트로 파보 예르비 & 도이치 캄머필하모닉의 무대편성표이다.
[사진2] 정확한 목관 2관에 더해진 현악기 4 - 3.5 – 2.5 - 2.5 - 1.5 Pult / 이미지 제공 = 빈체로
마에스트로 파보 예르비가 도이치 캄머필하모닉의 예술감독으로 2004년 취임해 2005년부터 녹음하기 시작한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에 대한 평을 잠시 인용해 본다.

“소편성 오케스트라라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만큼 폭발적인 에너지와 마에스트로 카를로스 클라이버를 방불케 하는 펄떡펄떡 뛰는 듯 생동감 넘치는 리듬, 치밀한 다이내믹으로 청자를 매료시키는 데 성공했다”.

2022년 공연 역시 <2관+7>이라는 기준점에서 한참 내려와 있는 도이치 캄머필하모닉. 그들의 연주가 펼쳐지는 음악회 무대 현장에서 귀와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는 재미는 아마 다음과 같은 것들이지 않았을까 싶다. ① 현악기의 볼륨이 목관악기, 금관악기, 타악기의 볼륨에 지지 않을까?
② 크기는 잃었지만 대신 기민함과 민첩성을 획득했을까?
③ 0-0.1-0.2-0.3- ............. -50.0 오케스트라 전체 볼륨의 크기를 귀와 눈으로 선명하게 듣고 보며 헤아릴 수 있다는 욕심이 나는 것 같네.
④ 목관악기 각각의 솔로들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것이었나.

음반평을 통해 음반 녹음현장의 무대를 상상해 보는 일

[사진3] 테오도르 쿠렌치스와 무지카 에테르나 오케스트라가 함께한 말러 교향곡 6번 앨범 / 사진 제공 = 문성욱
한국경제신문이 2018년 국내 클래식 음악계를 정리하며 음악 평론가 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당해 12월12일까지 인터파크에서 판매된 음반 판매량 순위를 반영한 결과에서 쿠렌치스 ‘말러 교향곡 6번’ 음반이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

링크) 한국경제 2018년 12월21일 주은진 기자의 기사
[말러 교향곡 6번 환호...... 음악팬, 조성진의 모차르트 열광] 중에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18122083671

국내의 클래식 음악 평론가들이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와 무지카 에테르나 오케스트라가 함께 녹음한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제6번 음반에 던진 칭찬의 말 중에서 두 개의 표현을 꺼내어 본다.

① ‘대편성 곡을 소편성 곡으로 대체하는 일’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제6번 교향곡은 5관 편성이다. 다시 말하면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네 악기의 연주자만 최소 이십 명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해온 것처럼 이 규모의 관악기와의 밸런싱을 위한 현악기들의 규모 역시 작을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지휘자 혹은 오케스트라의 창의적 표현을 위한 연주자들의 증감 역시 꾸릴 수 있는 여지가 주어져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편성 곡을 소편성 곡으로 대체하는 일’이란 말은 아마 파보 예르비 & 도이치 캄머필하모닉처럼 현악기에 관한 이야기일 가능성이 짙다. 목관악기, 금관악기, 타악기는 이미 작곡되는 시점부터 규모가 확실히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을 테니. 현악기의 규모를 줄인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목관, 금관, 타악기 소리의 볼륨과 선명함이 증가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표현을 언급한 평론가는 그런데도 전혀 힘이 달리지 않았다는 결론을 맺고 있다. 혹시 현악기의 편성이 축소되었음에도 현악기의 음량과 견고함이 유지되었음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이라면, 파보 예르비와 도이치 캄머필하모닉이 음악회 현장의 청중들에게 선사하는 기쁨과 비슷한 희열을 그 평론가는 느낀 것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②‘현대적 감각이 물씬 풍기는 특이한 창작물’

다섯 군으로 분류되는 현악기, 네 개의 악기로 분류되는 목관악기, 역시 네 개의 악기로 분류되는 금관악기. 이에 더해 말러는 6번 교향곡에 15종에 가깝게 타악기를 지정하고 있다. 음반을 녹음하는 현장의 무대편성 모습이 어떠하였을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현대적 감각’이란 표현이 구현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추측과 상상을 해본다.

언제인가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연주했던 한 국내 교향악단의 콘서트홀 연주에서 평소 목관, 금관, 타악기들이 위치해야 할 자리에 합창단원들이 빽빽이 위치한 까닭에 그 모든 악기가 현악기들과 서로 뒤섞인 채 무대 위에 분산되어 배치된 공연이 있었다. 귀에 익은 방향에서 들려오지 않는 타악기들의 소리가 낯설면서도 날것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더욱 매력적으로 들렸던 그런 연주라 기억하고 있다.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 익숙함 속에 불현듯이 나타나는 익숙하지 않은 것의 매력. 익숙하지 않은 듯 익숙함을 품은 것의 매력. 대편성 곡을 소편성 오케스트라로 재구성하며 악기군 상호 간에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음량 차이, 상대적인 볼륨을 높이며 다양하며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관과 금관 그리고 대편성 아래에서는 이름도 내밀 수 없었던 하나하나의 타악기들이 어필해내는 강렬한 존재감, 음악의 무게를 덜어내는 민첩함 등이 ‘현대적 감각’이란 표현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전 세계에서 도착하는 오케스트라들의 편성표를 잘 바라보고 있으면 이제 꽤 많은 것을 읽어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타악기의 종류가 많으면서 무대편성표에 타악기가 올라서는 무대덧마루가 지나치게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다면, ‘예술감독인 지휘자가 작곡가이겠군’ 생각해 볼 수 있고, 반(1/2)풀트가 가득 붙은 현악기가 표현된 편성은 전반과 후반 작품의 편성 규모가 조금 다른 곡들이겠거니 하면 대부분 그러하고, 20대의 호른이 표현되어 있다면 <알프스 교향곡>일 확률이 99%쯤 되고. 이백여 명이 연주하는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의 편성표를 받아볼 수 있는 동시에 그저 총 64명으로 꾸려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편성표 역시 받아볼 수 있다.

결국. 무대 위에 표현되는 음악회 무대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게 되는 일은, 한 작품에 대해 각각의 음악가들이 내린 최종적인 결론인 ‘해석’을 표현하는 그 첫 출발에 오해 없이 탑승하는 일이며, 실수 없는 여정을 마치기 위한 첫 이정표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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