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사람이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는 것, 이게 진짜 예술의 가치

[arte] 임지영의 예썰 재밌고 만만한 예술썰 풀기
뱅크시가 인천에 왔다. 파라다이스 시티에서 저 유명한 파쇄된 작품 '풍선없는 소녀'가 전시중이다. 몇년전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의 해프닝은 전세계 화제가 됐었다. 작품이 15억원에 낙찰되자마자 액자 속 장치에 의해 파쇄되는게 생중계됐으니.

자본주의에 던지는 각성의 돌이었으나 그것은 돈이 됐다. 몇년후 재경매에 나와 300억이 넘는 낙찰가로 다시 큰 화제가 됐다. 예술도, 예술계도 이해하려고 하면 머리 아프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배워갈 뿐. 그래서 예술 향유는 여유가 있어 누리는 게 아니라 굳이 애써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유연해지고 더 긍정하기 위해, 이 각박한 세계에서 더 잘 살아남기 위하여."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
뱅크시의 이 말을 참 좋아한다. '그들만의 리그'라고 오해되는 예술은 어쩌면 예술 당사자들이 방조한 것인지 모른다. 예술이라는 아름답고 특별한 성에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다고, 알맞은 교양과 수준을 갖추어야 한다고.

하지만 예술은 인류가 시작된 지점부터 함께 해왔다. 물론 미술사라는 거창한 담론 속에 예술로 명명되고 있지만, '존재의 증명과 표현', 그것이 예술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본능과도 같다. 예술은 아주 다양한 형식과 형태로 변주되며 끝없이 "거기 누구 없소, 나 여기 있소!" 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열린 여성센터, 여성 노숙인을 위한 쉼터에서 예술 수업을 했다. 처음 강의 요청이 왔을 때는 거절했다. 좋은 취지인 것은 충분히 알겠지만,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조금 불편했다는 게 맞겠다. 불편함.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외면한다.누군가 힘든 걸 알고, 어둔 밤을 헤매는 걸 알고, 생의 깊은 늪에 빠져 겨우 손 내밀고 있는 걸 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서, 나도 지금 내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서, 산다는 건 다 그런 것 아니겠냐며 애써 못본 척 하는 것이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예술에는 차별이 없다. 그림 한 점 앞에서 우리는 모두 초심자이므로 누구와도 평평하게 만날 수 있다.

눈 앞의 생존에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예술이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노숙인들을 변화시킨 인문학의 사례는 이미 차고 넘친다. 그들이 가져야 할 인권의 시작은 인문학에서 비롯됐는지 모른다. 세상의 모든 공부는 그 행위 자체가 갖는 힘이 있다. 꼭 책을 펴 밑줄 그어야 공부가 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에 눈을 빛내며 귀 기울이는 태도가 공부다. 상대를 존중하는 것, 생각을 길어 올리는 것, 나를 돌아보는 것, 모든 공부는 나를 사랑하는 시작점이다.

마스크를 눈 아래까지 덮어쓴 중년의 여성이 그림을 보고, ㅡ저 그림은 꼭 나 같다. 그냥 나는 혼자가 좋다고, 사람들이 싫다고만 생각했는데, 저 그림처럼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그런 날이 올까, 꼭 왔으면 좋겠다.ㅡ그 글을 들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는데, 아마 똑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서울문화재단의 서울예술교육랩 사업에 선정되며 예술 취약 계층을 위한 예술 수업을 기획, 운영하고 있다.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예술 취약 계층이긴 하지만, 좀 더 의미 있는 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다. 지역 아동 센터와 노인 복지관, 고립 청년을 위한 리커버리 센터와 발달 장애 예술가들의 어머니 협동 조합 등.

고립과 단절은 일부 취약 계층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의 모습이고 우리 모두의 민낯일지 모른다. 특히 청년들에겐 우리 나라의 미래가 달려있기에 기성 세대로서 그들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미안한 마음이다. 결국 속도와 결과 중심의 사회를 만든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청년들이 그림을 보고 쓴 글에도 솔직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자기 안의 그늘, 분노, 한계까지 가감 없이 표현했는데, 깜짝 놀랄 만큼 잘 쓰는 친구도 많았다. 그리고 그런 솔직한 감정을 이해받고 공감받자 눈에 띄게 표정이 밝아졌다. 가까이 있어도 우리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한다. 좋은 그림들로 꺼내놓는 진실한 마음들은 그들을 진짜 친구로 만들어줄 것이다. 나를 사랑해주는 단 한 명만 있어도 인생은 달라진다.위로와 치유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인간의 영역이라 생각지 않았다. 그런 마음이 충만하거든 신이 잠시 내 곁에 머무는 순간이라 믿는다. 그런데 예술을 통해 만난 분들은 모두 그 이야기를 한다. 함께 그림을 보고 글을 쓰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 서로의 진심에 끄덕끄덕 공감해주며 뭉클해하는 순간, '신은 다양한 얼굴로 우리 곁에 머무는구나' 가슴이 뜨거워진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환경과 상황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끝없이 나를 깨우고 일으켜야 그 권리 행사할 수 있다. 예술을 통해서 통찰과 성찰을 길어올리고 나눌 누 있어 정말 감사하다. 그림 한 점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 신기해서, 고고한 줄로만 알았던 예술이 우리 삶 속으로 스미고 번지는 것이 너무 신비해서 계속 하게 된다. 불안한 사람들이 조금 편안해지고, 편안한 사람들이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진짜 예술의 가치가 아닐까.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수용해주는 것. 예술이 주는 소통과 참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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