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경험은 있으신가요?

[arte]이자람의 소리
"연기 경험, 있으신가요?"
최근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다행히도 머릿속에 최근 연극<오셀로>의 에밀리아 역을 했던 경험과 지난해 연극<Oil>의 메이 역을 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그래 자신 있게 “네, 연극 무대에서 배우로 서 본 경험이 있습니다”라 답했다.

그런데 만약 필자가 <억척가>나 <노인과 바다>와 같은 필자의 창작 판소리 공연과 뮤지컬 <서편제>의 송화 역만을 해왔더라면, 응당한 기분으로 “네, 있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었을까?하고자 하는 말을 먼저 던지고 칼럼을 이어가 보려 한다.
판소리는 장단과 음의 배열(선율), 그를 표현하는 성음과(소리 부분) 소리꾼의 말(아니리 부분)로 구성되며 이 구성요소들이 이미 서사를 적극적으로 표출한다. 하여 딱히 열심히 연기술을 더하지 않더라도 이미 구성요소들의 조합으로 인해 서사의 연극성이 표출된다. 그러므로 이를 수행하는 행위 자체가 연기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관객이 있는 무대에서 판소리를 할 때는 소리꾼이 관객 앞에서 각 등장인물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정황의 묘사, 풍경의 묘사 등 굉장히 적극적인 연기술을 사용하기도 한다.

(유파에 따라 장단/음의 배열/성음에 집중함으로써 서사를 전하는 특징이 두드러지는 유파도 있다. 이러한 유파에서는 판소리의 음악적 완성도에 집중하며 무대 위에서의 적극적 서사 표출에 대해 오히려 경계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가 이수한 동초제 춘향가의 대모이셨던 오정숙 선생님은 소리의 높은 완성도와 더불어 무대 위에서 어마어마한 연기술을 펼치던 분이며, 그를 이어받은 필자 역시 서사와 인물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무대 연행 방식을 따르고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판소리는 연기술을 내포한 공연예술이다.

필자의 전통 판소리 훈련과정에서 연기 훈련 방식은 선생님이 표현하는 것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선생님의 장단, 선율, 성음을 모방하며 사설과 음악을 습득하고 그 과정에서 점차 표정과 너름새를 모방하게 된다. 그를 통해 선생님이 해석하여 재현한 인물을 그대로 모방하는 방식으로 연기술을 습득했다.전통 판소리는 인간의 군상들이 많이 등장한다. 하여 연극에서 배우가 인물을 구축하는 방법론과 같은 인물의 전사, 인물의 신체 행동, 나만의 인물 창조와 같은 접근이 아닌 각 군상의 사회적(암묵적) 동의에 의한 표면적이거나 보편적인 특징을 찾아 표현하는 것이 일반이다. (그래서 여성, 노인, 아이에 대한 편견이나 시대적 다름이 그대로 베어져 나오기도 한다. 춘향이든 월매든 심청이든 여성은 한 손으로 치마를 부여잡으며 소리를 하는 신체 행동을 예로 들 수 있다.)

군상을 표현하는 스승님들의 연기술을 그대로 모방하는 방식으로 연기를 접한 필자는, 연극을 동경해온 덕분에 전통 판소리의 연기 방법 외의 연기 훈련 방식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2007년 <사천가>(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작품 ‘사천의 선인’을 판소리로 만든 작품)를 만드는 과정에서 첫 방법론의 변화를 겪었고, 이후 2014년 <이방인의 노래>(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을 판소리로 만든 공연) 과정에서 두 번째 변화를 겪었다. <이방인의 노래>를 만드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연극적 연기술과 판소리 공연에서의 연기술의 다름과 접점을 탐구하고 훈련하기 시작했다.

연극적 관점으로 판소리의 연행 방식을 이야기해 보자면, 판소리는 1인 서사극으로 분류 가능하다. 서사를 진행하는 이야기꾼이 홀로 관객을 응대하며 등장인물로의 전환을 이루며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진행한다. 1인 서사극과의 분명한 차이점은 여기에 고수의 북장단과 개입, 관객의 개입, 그리고 서사자의 소리 표현 기술이 더해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판소리를 독창적인 예술로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이다.무대 위에서 이야기와 더불어 공연이 행해지는 실시간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입장에서 공연을 진행하는 것이 소리꾼이라는 역할이다. 이 소리꾼은 관객에게 소리꾼 자체로서 이야기를 건네다가도 순식간에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로의 전환을 이루어 서사의 긴장과 이완을 만들어 내고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이를 위해서는 소리꾼의 서사자로서의 명확한 태도와, 각 등장인물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연기술이 요구된다. 더불어 등장인물 간의 주고받기 또한 명확한 상상력으로 수행되어야 하며, 이는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에게 요구되는 방법론과 동일하다.

필자는 호기심이 많은 축복을 받았다. 하여 스스로의 연기 방법과 연극 무대 위에서 하나의 인물로서의 인물 수행 방법의 차이를 위해 연극배우로서의 도전을 시도할 수 있는 행운도 얻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호기심과 경험의 축적은 다시금 판소리를 수행하는 방법으로 순환되어 여러 가지 발견과 깨달음, 시도까지 이어져왔다.

이제 다시 첫 문단의 이야기로 돌아가 글을 맺고자 한다.
판소리는 - 각 유파와 개인마다 큰 격차가 있으나 - 연기술을 내포한 공연예술이다. 연기의 방법론은 각 장르마다 다르고, 연기를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판소리를 한다고 음악 기술만을 펼치는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다. 아마 더 좋을 질문을 찾는다면, “카메라 연기 경험이 있나요?”나 “소리를 활용하지 않는 인물 연기로서의 경험이 있나요?” 같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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