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요정'의 참신한 빛깔, 이야기꾼 지중배의 가을 밤 '천일야화'

DG 레이블 최초의 전속 여성 첼리스트
한경arte필하모닉 여덟 번째 정기연주회 협연

드보르자크 대작 'b단조 협주곡' 참신한 해석
개성적 어조와 호흡 서정적 장면에서 빛 발해

2부에 이어진 림스키 코르사코프 '세헤라자데'
치열하고 드라마틱한 연주로 관객 압도
연주자로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높이 평가될 수 있는 일일까? 지난 2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경arte필하모닉 정기연주회 1부를 지켜보면서 머릿속에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무대 위에서는 화려한 외모와 참신한 개성을 겸비한 첼리스트가 '자신만의 목소리'로 연주를 펼치고 있었다.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경아르떼필하모닉 '2023 더 클래식 시리즈8' 에서 지휘자 지중배와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 /최혁 기자
한경arte필하모닉은 올해 여덟 번째 정기연주회의 협연자로 프랑스 여성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를 초청했다. 토마는 1988년 파리 태생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대학 과정을, 바이마르에서 전문연주자 과정을 이수했다. 지난 2017년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DG)과 전속 계약을 맺은 후 국제무대에서 각별한 주목을 받아온 스타 첼리스트다. DG와 계약 당시 ‘레이블 최초 전속 여성 첼리스트’라는 사실이 부각되기도 했고, 이후 유튜브 등을 통해서 공개된 뮤직비디오들이 클래식 애호가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특히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봉쇄령이 내려진 가운데 파리의 건물 지붕 위에서 첼로를 연주한 영상은 상당한 화제를 모았었다. 국내 무대에는 2021년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리사이틀과 협연을 가지며 데뷔했고, 이번 협연은 그의 서울 데뷔 무대였다.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경아르떼필하모닉 '2023 더 클래식 시리즈8' 에서 지휘자 지중배와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 /최혁 기자
이날 토마는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늘씬한 체구와 숲의 요정을 연상시키는 청록색 의상으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의 화려한 자태에 객석 여기저기서 나직한 탄성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그가 실력이 아니라 외모 때문에 주목받고 있다는 일각의 의구심을 야기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의 연주는 어땠을까?

일단 기술적으로 완벽하거나 속 시원한 연주는 아니었다. 토마는 대개의 여성 연주자들이 지니는 ‘음량의 한계’라는 약점도 안고 있었고, 몇몇 빠르면서 기교적으로 까다로운 악구들에서는 그 복잡다단한 음표들을 또박또박 짚어내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모습으로 실망을 안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그가 연주한 곡은 ‘첼로 협주곡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드보르자크의 대작 ‘b단조 협주곡’이었다. 독주에 기술적으로 까다로운 대목이 많을 뿐 아니라 교향곡을 방불케 할 정도로 스케일 크고 복잡한 관현악까지 수반되기에 어지간한 남성 중견 첼리스트들도 애를 먹기 일쑤인 난곡이다. 따라서 독주자의 음량이나 기술적 완성도는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너그러이 바라보는 편이 바람직하다.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경아르떼필하모닉 '2023 더 클래식 시리즈8' 에서 지휘자 지중배와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 /최혁 기자
보다 중요한 판단 기준은 독주자가 그런 약점들을 상쇄할 만한 무언가를 보여주느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토마가 가진 개성과 매력은 그의 약점들을 덮고도 남을 만큼 돋보였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만의 발음과 억양, 참신한 표현 감각을 지닌 연주자였다. 그 개성적인 어조와 호흡은 서정적인 장면들에서 빛을 발했는데, 이를테면 첫 악장의 두 번째 주제선율을 독특한 뉘앙스로 채색한 솜씨라든지, 같은 악장 발전부에서 템포를 늦추며 우수 어린 표정을 극대화한 몰입도 높은 표현, 느린 악장 중간부에서 들려준 심도와 절제를 겸비한 비애의 노래 등은 세이지 오자와, 스티븐 이설리스 같은 거장들이 그의 어떤 면을 주목하고 발탁했는지 충분히 짐작하게 할 정도로 특별하고 매력적이었다.
한경arte필하모닉 공연이 끝난 뒤 악장(백수련 씨, 왼쪽)과 지휘자.
이날 공연의 2부에서는 ‘오케스트라 기량의 시험대’로 간주되기도 하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가 연주되었다. 최근 한경arte필하모닉은 모기업의 적극적인 지원과 젊은 단원들의 의욕적인 자세를 바탕으로 국내 악단들 가운데 중상위권 수준까지 도약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날 연주도 그런 악단의 발전상을 다시금 확인하게 하는 수준급의 연주였다.
한경arte필하모닉 공연이 끝나고 지휘자(지중배)와 협연자(카미유 토마)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관객들.
지중배는 유럽 무대에서 다져온 노련한 바통 테크닉을 바탕으로 앙상블의 세부와 전체를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동시에 공연 전에 직접 강조했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부각하는 지휘로 사뭇 치열하고 드라마틱한 연주를 이끌어냈다. 악단도 일부 긴장한 단원들이 간간히 잔실수를 범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연주를 들려주며 이 화려하고 다채로운 악곡의 매력을 충분히 전달했다. 이 곡에서 가장 중요한 바이올린 솔로를 맡은 악장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연주도 칭찬할 만했는데, 특히 곡 말미에서 길게 이어지는 ‘플래절렛 톤즈(flageolet tones)’의 충실한 구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황장원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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