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운 그녀 삶에도 '멋진 아침'이 올까…佛영화 '어느 멋진 아침'

미아 한센-러브 감독, 레이 세이두 주연
병든 아버지·철없는 딸·유부남 연인 둔 산드라
일상 속 변화하는 삶, 섬세하고 정교하게 그려
신경퇴행성질환으로 기억과 시력을 점차 잃어가는 아버지 게오르그(파스칼 그레고리 분)가 입원해 지내는 프랑스 파리의 한 요양원. 어느 날 딸 산드라(레이 세이두)는 요양원을 찾아 “아버지가 좋아하고 즐겨들었던 음악”이라며 몇 장 챙겨온 CD 중 한 장을 재생한다. 이 때 흐르는 음악이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0번 2악장. 슈베르트가 3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1828년 9월)에 완성한 세 편(19~21번)의 연작 소나타 중 가장 잘 알려진 악장이다.

4악장으로 구성된 소나타 20번의 2악장은 F샾(#) 단조로 조금 느리게(Andantino) 연주하는 3부 형식(A-B-A)의 곡이다. 영화에서는 우수에 찬 가곡풍의 구슬픈 주제 선율이 다섯 번 반복되는 2악장 초반부의 A파트가 흐른다. 게오르그는 음악을 듣고 잘 아는 듯이 단조의 주제 선율을 흥얼거리며 따라하지만, 곧 머리를 쥐어짜며 힘들어한다. “음악이 너무 무겁다”고 하자 수잔나는 “보다 가벼운 음악을 틀겠다”며 CD플레이어를 끈다. 산드라가 요양원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2악장 A파트가 배경음악으로 다시 흐른다. 이번엔 다이내믹(셈여림)이 극심하게 변하는 변주부분이다. 곧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얼굴의 산드라.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애써 삼키며 집으로 향한다.
다음달 6일 개봉하는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프랑스 영화 ‘어느 멋진 아침’에서 음악과 인물의 심리 묘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멋진’ 장면이다. 이 영화는 파리에서 동시통역사로 일하는 산드라의 일상을 따라가며 그의 인생 한 단락을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처럼 한센-러브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은곰상)을 받은 ‘다가오는 것들’(2016년 국내 개봉)에서 파리 철학 교사 나탈리(이자벨 위페르)의 삶을 풀어낸 방식과 비슷하다.

파리 태생으로 철학자였던 부모의 영향으로 철학을 공부한 한센-러브 감독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인물의 삶을 정교하면서도 공감이 가도록 담은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이 영화도 그렇다. 감독 개인의 삶과 많은 부분 닮아 있다. 한센-러브 감독은 “’다가오는 것들‘은 철학자인 어머니, ’어느 멋진 아침‘은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염두에 두고 그 영향 아래 만들었다”고 했다.
5년 전 남편과 사별한 산드라는 통역사로 바쁘게 일하면서 여덟 살 난 딸을 홀로 키우고, 병세가 악화되고 있는 아버지를 돌본다. 여기에 영화 초반 남편의 오래된 친구이자 유부남인 클레망(멜빌 푸포)을 우연히 만나 그와 다시는 못할 줄 알았던 사랑을 나누며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이 세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짜여지는 산드라의 일상은 버겁기 그지 없다. 영화는 가족들과 연인과의 계속 변화되는 관계에서 나타나는 산드라의 감정을 섬세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포착해 보여준다. 산드라는 아파트에서 일반 종합병원으로, 다시 민간 요양원으로 거주지를 옮겨가는 아버지의 관계에서 더할 수 없는 상실감을 느낀다.

철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서재를 정리하던 산드라는 딸에게 혼자 되뇌이듯이 말한다. "요양원에 계신 할아버지보다 서재와 책에서 그 존재가 더 크게 느껴져. 육체는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고 책은 그의 영혼에 더 가까우니까. 물론 책이 할아버지 그 자신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이 책들은 할아버지가 직접 선택한 것들이고 고른 것들이니까."
엄마의 관심을 끌려고 다리를 다친 척하는 어린 딸을 돌보는 것도, 유부남인 연인과 일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산드라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 제목인 ‘어느 멋진 아침‘은 극중에서 산드라의 아버지가 자전적인 이야기를 써내려간 한 장의 제목이다. 갈수록 버거워지는 산드라의 삶에서도 ’어느 멋진 아침‘이 찾아올까.

연인과 딸과 동행해 아버지를 뵙고서 씁쓸한 기분으로 나온 산드라가 일행과 함께 파리 전경을 바라보며 활짝 웃는 엔딩 장면은 희망적이다. 산드라 역을 맡은 레이 세이두의 호연이 '삶은 어디서나 언제나 존재한다'는 이 영화의 주제에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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