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노이즈 캔슬링과 주변음 허용

박동진 이크루즈 대표
요즘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구입할 때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얼마나 강력한지가 제품 선택 기준이 된다. 노이즈 캔슬링은 기기에 내장된 소음 조절기를 통해 외부 소음을 감소시켜 소음이 심한 장소에서도 음악과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기능이다. 필자도 이 기능이 들어간 이어폰을 구입해 쓰고 있다.

얼마 전 일이다. 해 뜨기 직전 산에 오르는 게 취미여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혼자만의 산행을 즐기고 있었다. 적당히 숨이 차오를 때쯤 땀을 닦다가 이어폰을 잘못 건드려 노이즈 캔슬링 모드가 취소되고 주변음 허용 모드가 됐다. 평소에는 이용하지 않는 기능이었는데 다시 설정하기가 귀찮은 데다 산 중턱을 넘어 힘이 들던 터라 그냥 걸었다.그렇게 걷기를 10여 분, 곧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주변의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뭇잎을 밟을 때와 흙길을 걷을 때 소리가 다른 것도 처음 알았다. 음악과 함께 들리는 내 숨소리도 좋았다. 혼자만의 산행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걷는 시간이 됐다. 그렇게 주변의 소리와 함께 두 시간을 걸었고 마침내 산 정상에 올랐다. 매번 오르던 산이었는데, 이날만큼은 완전히 다른 산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많은 반성을 했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간혹 주변 의견이나 평가를 ‘노이즈’라고 생각하고 차단하는 경우가 많다. 내 생각이 항상 옳다고 믿고 직진하는 것이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자녀들과 함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만 눈에 보이는 그들의 학습량이나 진도만 체크하고 더 중요한 학교생활이나 교우관계에 대해서는 듣지 않는다. 사업도 그렇다. 고객에게 정말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대부분의 시간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할애하고 있지 않은가.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노이즈라고 생각한 소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얻을 수도 있고, 노이즈가 주변의 상황을 숨김없이 알려주는 원자료(raw data)가 될 수도 있다. 나의 삶의 목적이나 방향을 긍정적으로 이끌어주는 원천일 수도, 뜻밖의 경험을 할 기회를 제공해줄 수도 있지 않은가. 익숙한 주제라도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자신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시야를 넓힐 수 있다.‘토크쇼의 제왕’ ‘대화의 신’이라고 불리며 세계 최고의 앵커로 평가받는 래리 킹은 그의 저서에 이렇게 적었다. “대담 중 내가 하는 말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는 사실을 매일 아침 깨닫는다. 오늘도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그저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노이즈 캔슬링을 잠시 꺼두고, 듣자 우리 주변의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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