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주'라기엔 얼굴도 연기도 이상한(?) 천의 얼굴, 천우희

[arte] 오동진의 여배우 열전-천우희
여배우는 사랑의 대상인가, 기억의 주체인가
천우희는 몇 가지 점에서 여우주연 여배우가 갖춰야 할 덕목을 지니지 않고 있다. 아이돌 급의, 그러니까 바비 인형 같은, 곧 서구형 인조 미인이어야 할 것이 첫 번째 조건인데 천우희를 보면 그것과는 영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녀 역시 예쁜 미모지만 그렇다고 절세 미인은 아니다. 이른바 여주 후보 1순위는 아닐 수 있다. 무엇보다 천우희가 현대 영화나 드라마에 맞지 않는 여배우라고 하는 이유는 연기를 잘.한.다.는 것이다. 많은 여배우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특히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같은 청춘물에서는) 연기력이 아니다. 그냥 조용히 있으면 된다. 조연들이 알아서 턱턱 밥을 먹여 주면 된다. 단, 잘 받아 먹을 줄은 알아야 한다. 너무 신랄한 얘기인가. 진실은 워낙 시고 맵고 짠 편이다.
영화 '한공주'
이수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2013년 최고작 소리를 들었던 ‘한공주’에서 천우희는 주인공 한공주로 나온다. 이때 그녀의 중요한 소품은 한공주라는 이름이 정확하게 보이는 플라스틱 명찰 표와 그녀가 끌고 다니는 바퀴 달린 작은 캐리어 가방 그리고 그녀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이다. 이수진의 카메라는 줄곧 백팩을 메고 흔들흔들 걸어 가는 한공주의 뒷 모습을 따라 간다. 그 팔로우의 시선이 의미심장하다. 공주 얘는 왜 이렇게 거리를 떠도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 가. 종국에 이 아이의 끝은 어디인가. ‘한공주’는 2004년 밀양에서 실제 벌어졌던 사건, 여자 아이들에 대한 수십명 남자 아이들의 윤간 사건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천우희는 이 작품이 데뷔가 아니었음에도 사람들에게는 충격의 데뷔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방점은 ‘데뷔’보다 ‘충격’에 찍힌다. 천우희는 이 영화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탔다. 영화는 들꽃영화상에서 감독상과 대상을 탔다.

천우희를 가리켜 이 시대의 주연 여배우라고 하면 이상하게도 약간 어색하게 느껴진다. 천우희를 보고 있으면 주연 여배우란 말이 갖는 의미를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사람들이 여배우에게 바라는 것, 그 욕망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여배우와의 일탈을 꿈꾸는 것일까. 그런 1차적 욕망을 완전히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얘기하는 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진짜로 여배우에게 바라는 것은 그런 속된 욕망보다는 반려(伴侶)이자 공생일 것이다. 한 시대를 함께 하는 것. 그런 공감각일 것이다. 사람들은 천우희를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여배우로 꼽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 가면서 가장 기억하는 여배우로 그녀를 꼽을 가능성이 높다.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어느 것이 여배우 스스로에게는 가장 좋을 것인가.
영화 '곡성'
2015년에 나온 나홍진 감독의 ‘곡성’에서 천우희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척 아주 중요한 역으로 나온다. 동네에서 갑자기 나타난 약간 미친 여자인 무명이란 역인데 그녀는 처음에 주인공인 시골 경찰관 종구(곽도원)에게 골목 어귀에 앉아 돌을 던진다. 종구는 막 시골집 어딘 가에서 끔찍하게 살해된 시체를 신고 받고 현장을 다녀 오는 길이다. 종구는 돌을 던지는 무명에게 저리 가라고 뭐라뭐라 한다. 이 뜻 없어 보이는 시퀀스에서 천우희는 자신이 죄없는 자임을, 사실은 악귀 편이 아니라 악귀를 좇은 쪽임을 암시한다. 예수 가라사대, 죄없는 자여 돌을 던지라 했기 때문이다. 무명은 극 후반부에 골목에서 불쑥 튀어 나와 동네를 헤매는 종구에게 ‘시방 어디 가냐’며, ‘저짝으로 가면 너 죽어’,라고 눈을 희번덕 거린다. 그때 닭이 세번쯤 우는데 베드로는 예수를 세번 부인했지만 무명은 세상을 향해 경고를 세번쯤 하는 셈이다. 천우희의 그때 연기는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짐짓 퇴마사 역할을 하며 인간의 영혼을 쪽쪽 빨아 먹으려 했던 일광 역의 황정민보다, 혹은 외지인 악마 역의 쿠니무라 준보다 하얀 소복의 천우희가 더 기억 날 것이다.
영화 '버티고'
천우희의 저주받은 수작은 2019년 전계수 감독이 만든 ‘버티고’이다. 천우희는 여기서 유부남 진수(유태오)와 사내 불륜 중인 서영이란 역할로 나온다. 그녀는 이석증을 앓고 있어서 종종 하늘과 땅이 흔들린다. 그건 마치 알프레드 히치콕이 만든 동명 영화 ‘버티고’에서 주인공 스카티 형사가 고소공포증에 시달리며 옥상이나 사다리를 올라갈 때마다 세상이 흔들거리는 것을 패러디한 느낌을 준다. 스카티나 서영이나 불안증이 심해지면 공포와 불안이 엄습한다. 현대인들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서영은 고층 유리창 닦이인 관우(정재광)를 만나게 되고 둘은 사랑 아닌 사랑에 빠진다.

전계수의 ‘버티고’의 시작은 화이트 컬러 여성과 블루 컬러 남성의 러브 스토리였다. 궁극적으로 영화는 그런 주제를 잘 살려 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천우희에게는 그런 ‘계급적 흐트러짐', 그 기묘한 해체와 해방 의식이 가능할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준다.

은막의 스타인 여배우가 24시간 트럭 운전사와 살 수 있을까. 잘 나가는 외국계 기업에서 중역으로 일하는 여자가 시골에서 음식점을 하며 살아가는 연하의 남자와 주말 커플로 더 잘 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버티고’의 천우희는 그런 환상이 결코 비현실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런 느낌이야 말로 사람들이 천우희를 좋아하는 이유일 수 있다. 고급스럽고 상류층일 것 같지만 서민적이고 지적이지만 겸손한 여자라는 것. 그것이야 말로 천우희의 매력 포인트이다.
tv N '이로운 사기'
16부작 드라마 ‘이로운 사기’는 그다지 흥미로운 작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두 가지는 성취했을 것이다. 돈을 많이 벌었을 것이고 사람들에게 인지도를 확실히 높였을 것이다. 그거면 됐다. ‘이로운 사기’보다는 그 직전, 코로나 시즌 말기에 나온 ‘앵커’가 더 잘 어울린다. 그녀는 거기서 방송국 앵커로 나온다. 앵커 멘트를 정말 잘 한다. 저러다 정말 뉴스캐스터가 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영화 ‘앵커’는 심리 스릴러이다. 천우희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잘 꺼낼 줄 아는 여배우이다. 성격파 여배우라는 표현은 이럴 때 하는 것이다.

처음의 얘기로 돌아가면, 아이돌 급 미모만 추구하는 여배우 문화보다는 연기파 여배우를 사랑하는 영화 문화가 오래가는 법이다. 내가 천우희를 옹호하는 이유이다. 천우희가 이 글을 옹호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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