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법정의 비단보자기

경찰이 검찰로 넘긴 사건기록은 추가·보완 수사를 하면서 불어나게 마련이다. 검사들 방마다 사건기록이 수북이 쌓여 있는 이유다. 최근에는 강도·절도 같은 전통적 형사범죄 외에 사기·횡령·배임·명예훼손·금융범죄 등이 부쩍 늘고 범죄 수법도 교묘해진 탓에 수사 과정이 복잡해지고 사건기록도 더 늘었다고 한다. 그만큼 검사들이 법정에 갈 때 싸는 ‘비단 보자기’도 커질 수밖에 없다. 가방이 아니라 보자기에 기록을 담는 것도 양이 많아서라고 한다. 정명원 대구지검 상주지청장은 최근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오늘 다 팔고 와야지’ 하는 마음으로 아침에 보자기를 싼다”고 했다. 그날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되면 기록들을 법원에 내고, 채택되지 않으면 다시 싸 들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판사들도 평생 ‘기록 보따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건 하나의 소송 기록이 수백 쪽에서 수천 쪽에 이르는 탓에 퇴근 후 집으로 보따리를 갖고 간다는 것. “법관 재직 중에 나는 소속 법원의 판사들 전원에게 보자기를 나누어주는 법원장을 본 일이 있다. 기록을 싸 가지고 가서 집에서도 일하라는 뜻으로 준 보자기였다. 그래서 법관 생활은 보따리 장사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정인진 변호사가 2021년 출간한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에서 밝힌 내용이다. 한번은 밤늦게 기록을 보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에게 아내가 혀를 차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이 고3이유? 이게 뭐 하는 짓이유?”이제 형사 법정에서도 비단 보자기가 사라질 모양이다. 검찰이 오는 10월 세계 최초로 형사사법 절차를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차세대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 통합 테스트에 들어가면서다. 검찰·경찰·해경 등이 1500억원을 들여 구축한 킥스는 형사사법기관들이 수사·기소·재판·집행업무 과정에서 발생한 정보와 문서를 연계해 공동 활용하는 디지털 형사 시스템이다. 이미 전자화한 민사소송, 행정소송과 달리 형사사법 절차는 아직 종이 문서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전국 검찰과 법원에서 매년 처리하는 약 180만 건의 형사사건 기록이 모두 디지털화된다는 얘기다. 각종 사건기록을 온라인·모바일로 공유할 수 있다니 사법 서비스의 일대 혁신이 기대된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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