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직업으로서의 의사

사회적 중요성·성취감 큰 직업
의대 쏠림은 나름 합리적이지만
초등생부터 '의대 과외'는 문제

AI 발전 따른 의사 지위 변화와
헌신의 마음 있는지도 살펴봐야

복거일 사회평론가·소설가
개항 뒤의 인천을 그린 신태범의 <인천 한 세기>엔 ‘약대인(藥大人)’ 얘기가 나온다. 제물포에서 활동한 미국 의사 일라이 바 랜디스의 행적을 소개한 글이다. 1890년에 그는 성공회의 해외 선교에 응해서 조선으로 왔다. 제물포에서 큰 집을 빌려 방 둘을 병원으로 삼았다.

그는 한성으로 올라가지 않고 작은 포구에서 가난한 민중을 치료했다. 발전된 의술과 헌신적 치료 덕분에 그는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그의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그를 ‘약대인’으로 높였다. 그의 병원이 자리 잡은 작은 봉우리는 ‘약대인산’으로 불리고 …. 결국 그는 과로로 건강을 해쳐서 1898년에 장티푸스로 죽었다. 많은 조선인 환자를 ‘염병’으로부터 구해준 그가 그 병으로 죽은 것이었다. 겨우 33세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약대인’은 차츰 잊혔고 ‘약대인산’은 ‘약대이산’이 됐다가 산 자체가 깎여서 주택가가 됐다.‘약대인’의 일화를 기록한 신태범 자신도 의사였다. 인천에서 외과의원을 운영했는데, 환자가 밀려들어 은퇴할 때까지 휴가 한 번 못 갔다고 한다.

며칠 전 주석중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의 시술을 받은 환자들이 애도하는 모습과 함께 환자들에게 가까이 있으려고 병원 가까운 데 집을 마련했다는 얘기가 실렸다. 병을 고치고 목숨을 살리는 직업이니, 의사는 사회적 중요성과 개인적 성취감이 유난히 큰 직업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의사는 소득과 신분이 가장 높다. 의사 동업조합(guild)의 힘이 유난히 큰 우리 사회에선 특히 그렇다.

따라서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로 쏠리는 현상은 나름으로 합리적이다. 그러나 초등학생들이 ‘의대 진학 과외’를 받는 것은 분명히 문제적이다. 자식에게 좋은 직업을 마련해주려는 마음이야 자연스럽지만, 어린 자식에게 의대에 가서 의사가 되라고 권하는 일은 적어도 세 가지 점에서 위험하다.먼저, 어린이들은 일반적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너무 일찍 특화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비합리적이다. 모든 것이 점점 빠르게 바뀌는 현대 문명에선 특히 그렇다. 전문성이 아무리 각광받는 시대일지라도 세상을 읽는 종합적 시야는 확보해야 한다.

다음엔, 위에서 든 세 분의 경우처럼 훌륭한 의사가 되려면 헌신적 성품이 필수적이다. 그런 성품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대학에 갈 나이는 돼야 드러난다. 성품과 재능이 드러나기 전에 미리 부모가 자식의 직업을 결정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셋째, 의사는 인공지능의 발전으로부터 영향을 깊이 받을 직업 가운데 하나다. 1980년대 중엽에 ‘CADUCEUS’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이후 의료 전문가체계(medical expert system)는 빠르게 발전해서 이제는 의사들 의료의 중심이 됐다. 심층학습(deep learning)의 가속적 발전은 전문가체계의 신뢰도를 빠르게 높일 것이다.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내과 분야에서 의사들은 그런 전문가체계를 병자들이 쉽게 이용하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주로 수행할 것이다. 그런 전문가체계를 잘 다루는 사람들은 직접 진단과 처방을 받을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부착진단기기(smart wearables)는 의사 배제(disintermediation) 추세를 가속할 것이다. 자연히 의사의 고양된 사회적 지위는 상당히 낮아질 터이다.

다른 편으로는 로봇이 외과의를 대체하기는 매우 어렵다. 몇억 년 동안 진화해온 터라, 동물들의 움직임은 더할 나위 없이 정교하다. 오랫동안 나무 위에서 살아온 영장류는 공간 감각이 뛰어나고 팔을 잘 쓴다. 사람의 손길은 특히 섬세하다. 수술에서 로봇이 차지하는 몫은 꾸준히 늘어나겠지만, 두 세대 안에 로봇이 외과의를 대체하는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다.

어린 자식의 장래를 위해 큰돈 드는 ‘의대 진학 과외’에 보내는 부모들은 위에서 든 세 가지 사항을 살피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춘기를 지나 몸이 다 자라고 마음도 어느 정도 안정됐을 때 아픈 사람들을 위해 헌신할 마음이 있는지 그리고 외과의가 될 만큼 손재주가 좋은지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아마도 자식을 위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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