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품위 있는 그들의 이혼

이영희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동안 내가 당신한테 상처 준 거 너무 미안해. 앞으로는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극렬하게 이혼소송을 하던 중 남편의 양보로 합의점을 찾게 돼 조정이 성립했던 부부의 얘기다. 마지막 서명을 한 후 남편이 이렇게 말을 건네자 아내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고, 남편도 눈물을 흘렸다. 아내는 남편이 한 말에 그동안 쌓였던 미움과 원망의 감정이 한꺼번에 북받쳐 올라왔던 모양이다. 한참 후 울음을 멈춘 아내는 남편에게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말을 건넸다. 아내를 대리했던 사건이고,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장면이다.

변호사는 이혼소송이 ‘판결’이 아니라 ‘조정’으로 종결되는 경우 부부간에 나누는 다양한 마무리 대화를 듣게 된다. 서로 간의 극한 감정대립으로 인해 대부분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떠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간혹 결혼생활 동안 서로에게 준 상처에 대해 미안함과 용서를 구하는 말, 많은 양보를 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 상대방의 건강을 걱정하는 말 등을 듣게 될 경우 깊은 인상으로 남는다.이혼의 방식은 크게 협의 이혼과 재판상 이혼이 있다. 소송을 통해 이혼한다는 것은 서로 간에 소통이나 합의의 접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임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혼소송 과정은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르게 된 책임이 모두 상대방에게 있다”거나 재산분할에 있어 상대방의 기여를 폄하하며 치열하게 다투는 경우가 많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게 된다.

이혼은 두 사람이 형성한 혼인이라는 법률관계를 정리하는 것에 불과할 뿐, 두 사람의 관계를 완벽하게 단절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미성년의 자녀들이 있는 경우에는 이혼 후에도 자녀들의 양육과 교육, 면접교섭 등으로 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혼 후에라도 힘든 상황을 터놓고 의논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 자녀들의 문제를 진지하게 같이 고민하거나 어느 한쪽이 어려움에 처할 경우 도와줄 수 있는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이혼소송 과정에서 서로 간에 진흙탕 싸움이 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물론 쉽지 않은 문제다.

부부가 어쩔 수 없이 이혼하기로 결정했다면 차선으로 ‘품위 있는 이혼’에 관해 한 번쯤 고민해보면 좋겠다. 이혼율이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혼을 결정한 부부들을 위해서라도 위자료나 재산분할을 더 받는 식의 접근 방법이 아니라, 삶의 중요 부분을 차지했던 결혼생활을 품위 있게 마무리하는(Well-divorce) 관점에서 활발한 논의와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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