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정박에 대한 반항?

[arte] 키위꾸르의 LP&재즈 라이프
‘덩기덕 쿵더러러러’와 ‘얄라셩 얄라리 얄라’

학창 시절 유독 기억나던 두 문구다. 하나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국악 장단이고, 다른 하나는 청산별곡의 한 소절이다. 표지만 봐도 잠이 절로 오는 교과서를 읽다가 잠시나마 이 문구를 보면서 혼자 피식 웃었던 기억이 있다.소리 내어 읽으면 괜히 묘한 흥이 생기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이 두 문구를 읽으면 글자별 음의 길이를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 (매우 당연한 이야기지만) ‘장단’이라는 단어도 한자 뜻을 그대로 보면 길고, 짧음을 뜻한다.

메트로… 놈.
아무리 봐도 어릴 적부터 난 박치였다. 피아노 선생님은 박자를 놓칠 때마다 내 손등에 연필로 사랑의 매를 선사하셨지만, 실수는 여전했다. 결국 선생님은 “넌 커서 재즈나 쳐라"라고 말씀하시며 피아노 옆에 상항 놓여있던 메트로놈을 치우셨다.

어린 나이에 나는 재즈가 박치들을 위한 음악이라는 잘못된 편견을 갖게 되었고, 박자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재즈라는 장르를 접한 것도 이렇게 엇박자로 시작되었다.‘원. 투. 원투쓰리’
재즈 바에서 피아노와 베이스, 기타, 보컬로 구성된 쿼텟 밴드가 연주를 앞두고 있다. 첫 곡을 연주하기 직전에는 적막과 긴장감이 흐른다. 무대 위 네 명의 연주자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연주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낸다.

이날은 피아니스트가 리드 역할을 맡았다. ‘원, 투, 원 투 쓰리’를 속삭이며 쿼텟은 오프닝 곡으로 경쾌한 곡 연주를 시작한다. 첫 번째 곡인 만큼 힘차고 박자도 빠른 편이다. 다만, 한 명이라도 박자를 놓치면 다음 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다.

어떤 연주라도 첫 곡은 떨릴 수밖에 없고, 라이브 재즈 공연도 마찬가지다. 관객한테도 이런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달돼서 그런지, 스마트 워치에서 심박수가 120bpm을 넘었다는 알림을 가끔 보내기도 한다.이럴 때마다 어릴 적 피아노 선생님이 하신 박자에 대한 말씀이 떠오른다. 재즈조차 어렵게 느껴진다면 ‘난 정말 박치 오브 박치’인 걸까?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재즈 공연에서는 가능한 한 피아니스트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는 버릇이 생겼다. 피아니스트가 다른 악기가 연주하는 동안에도 계속 발뒤꿈치를 바쁘게 움직이며 박자를 맞추는 모습을 보면 잠시 길 잃은 양이 무리를 다시 찾은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재즈는 박치를 위한 장르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기본적인 정박자뿐만 아니라 엇박자와 같은 기교까지 부릴 수 있어야 연주가 가능한 장르인 것이다. 간신히 피아니스트의 발 모양을 따라 박자를 다시 되찾은 후에도 나는 여전히 긴장하며 연주를 듣는다. 그러나 흥겨운 박자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긴장감이 집중으로 바뀌어있다.

재즈는 왜 엇박이어야 했을까?
클래식 음악은 악보에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어 10초, 1분 후 곡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있다. 따라서 같은 곡을 반복해서 들으면 새로운 디테일이 들리고 감정을 되돌아볼 수 있는 일종의 ‘숙회'같은 매력이 있다. 반면에 재즈는 외줄타기와 같다. 바로 이 긴장감이 재즈를 몰입감 있게 만든다. 영화에서 반전이 있다면 재즈에서는 엇박이 있다.많은 자료에 따르면 재즈는 종종 사회적 규범과 전통에 대한 반항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엇박은 당시 억압을 받던 사람들의 답답함을 나타내고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시민운동가들이 차별 철폐와 투표권 획득을 위해 싸우는 동안 음악가들도 자신의 방식으로 기존의 틀에 반대하려고 했을 것이다.

즉흥 연주
재즈 음악에서 엇박자와 함께 단골로 등장하는 요소는 즉흥 연주(improvisation)다. 작곡가의 악보를 기준으로 삼는 기존 음악과는 달리, 재즈 악보는 짧은 곡이라도 한 장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재즈 음악가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지고, 연주되고 있는 ‘재즈 스탠더드’ 악보에는 보통 멜로디와 하모니가 간략하게만 표기되어 있다. 느슨한 규칙으로 이루어진 음표와 박자 사이의 공백은 채우는 것은 연주자 자신의 몫인 것이다.

연주자는 각자의 악기와 기교를 살려 이 공백을 채우고, 같은 제목의 곡이라도 자신만의 곡을 만들어 뮤지션의 창의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렇게 엇박은 기존 규범에서 벗어나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즉흥 연주가 궁금하다면 Miles Davis의 So What의 트럼펫, Keith Jarrett의 Koln Concert에서 피아노, Sonny Rollins의 St. Thomas의 색소폰 연주를 추천한다. 이 세 곡은 처음에 악기들이 조밀하게 짜인 멜로디와 구성으로 합주를 시작한다. 그러나 1-2분 남짓 지나면 악기들이 돌아가며 각자의 방식과 추임새를 하나둘씩 덧붙여 각자도생하는 것처럼 들린다.

곡 처음에 들었던 익숙한 멜로디는 간데없고, 악기별로 엇박자의 기교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엇박자의 강도는 높아지고, 곡이 점차 분해되는 느낌은 마치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젠가 탑을 보는 심정과 같다. 처음에 들었던 멜로디와 박자는 언제 다시 나타날지 초조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비록 모든 악기가 마치 엔트로피의 무한대로 향하는 것처럼 들릴지라도, 곡의 최고조(클라이맥스)에 이르렀을 때 신기하게도 처음 도입 부분으로 다시 돌아가는 ‘귀소본능'이 있다.

실황 공연에서 악기별 연주자의 표정을 보면 각자 자신의 음악적 세계로 빠져들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것처럼 보일지라도, 다행히 우주여행(?)을 마친 연주자들은 어느덧 다시 제자리에 착지하며 '함께' 곡을 마무리한다.

재즈는 고풍스럽고 난해한 장르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 엇박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즈 음악을 빨리 친숙하게 느끼는 방법은 가까운 라이브 재즈 바에 가는 것이다. 일반적인 재즈 바 공간은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로 가득 찬 공연장과는 달리 소박하다.관객은 연주자와 가까이 앉아 표정을 관찰해 볼 수도 있고, 피아노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박자를 세는 연습도 할 수 있다. 연주자들의 표정과 서로 주고받는 눈빛 신호를 보면 재즈 음악이 얼마나 포용적인지 알 수 있다. 다만, 색소폰 바로 앞에 앉아 있으면 연주자의 침이 튈 수 있으니 주의하자.

재즈바가 아직 부담스럽다면, 주말이나 출근길 등 평소 듣기 좋은 재즈곡부터 찾아보자. 개인적으로 차분한 Erroll Garner의 Misty, 화사한 5월에 어울리는 Stan Getz의 Girl from Ipanema, 가벼운 피아노 즉흥 연주가 포함된 Eddie Higgins의 Felicidade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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