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삶이 들어오는 일-한재민을 처음 만난 날

[arte] 강선애의 스무살 하콘 기획자 노트
봄이 왔다. 내가 본격적으로 이 계절을 체감하는 건 달력의 숫자나 피어나는 꽃봉오리가 아닌, 통영국제음악제다. 음악제가 시작되고 SNS에 통영의 풍경과 공연 사진들이 쉴새 없이 올라오면 그제야 진짜 봄이 왔음을 느낀다. 늘 타인의 사진으로 대리만족 해오다 올해는 모처럼 하우스콘서트 식구들과 함께 통영으로 떠났다.

음악제의 일정 중에서 우리와 인연이 깊은 두 연주자인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첼리스트 한재민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선욱은 이번 음악제의 상주 음악가로, 한재민은 전년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의 우승자로 음악제의 무대에 나란히 올랐다.예원학교 3학년 때인 2004년 처음 하우스콘서트 무대에 올라 이곳에서 성장의 기록을 남긴 김선욱처럼, 한재민 역시 우리가 발견한 소중한 원석이다. 문득 그와의 첫 만남을 떠올려보니 불과 몇 년 전이라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첫 만남

한재민을 처음 본 건 2017년 어느 행사에 참석하면서다. 영재 연주자로 소개되며 짧은 트리오 연주를 한 그는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마침 하우스콘서트의 연말 갈라콘서트에 소개할 영재 음악가를 찾고 있던 나는 세 명의 연주자 중 어린 두 친구에게 갈라콘서트 연주 제안을 건넸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준비하기 매우 빠듯한 이 공연에 한 사람만이 응답했다. 한재민이었다. 보통 10개 팀이 각 10분씩 연주하는 하우스콘서트의 갈라콘서트는 관객에게는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공연이다. 그러나 연주자에게는 어떤 면에서 단독 공연보다 훨씬 부담스러운 무대이기도 하다. 10분 안에 임팩트 있는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점에서나 무대 리허설 기회를 거의 주지 않는다는 점, 실제 연주에서 앞뒤 다른 팀들의 연주 분위기에 영향을 받기 쉽다는 점에서 그렇다.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가는 하우스콘서트의 매운맛을 톡톡히 보고 돌아가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공연의 최연소 출연자였던 한재민은 하우스콘서트의 단맛만 느끼는 듯했다. 긴장하는 기색은커녕 오히려 의연하고 뻔뻔했기 때문이다. 대기실에서 오도독 오도독 과자를 먹는 모습은 영락없는 초등학생이었지만, 무대를 당당하게 즐기고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는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아! 이 녀석이다.”
최연소 연주자

갈라콘서트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한재민의 솔로 리사이틀을 이듬해 2월로 잡았다. 6학년으로 올라가기 전에 다시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갈라콘서트에서 보여준 10분의 임팩트가 90분의 솔로 리사이틀에서도 발휘될까? 준비할 시간이 두 달밖에 남지 않은 공연을 이 친구가 과연 받아들일까? 매니저들이 반신반의하는 사이 박창수 선생님의 목소리가 어깨너머로 들려왔다. “이야기해 봐. 아마 할 거다.”

박창수 선생님의 예상처럼 한재민은 갈라콘서트로부터 정확히 두 달 뒤 솔로 리사이틀을 선보였다. 하우스콘서트 역사상 최연소 연주자의 무대였다. 관객은 스무 명 남짓. 하우스콘서트가 소개하는 영재 음악가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아는 소수의 관객만이 이 자리에 모였다.이후로 한재민은 우리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다양하게 참여하며 솔로와 앙상블, 매년 연말의 갈라콘서트, 24시간 프로젝트에서의 새벽 4시 연주, 피아니스트 김선욱과의 듀오 연주 등 하우스콘서트에서의 기록을 촘촘히 남겼다. 그리고 그동안 두 개의 국제 콩쿠르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연주자의 삶이 들어오는 일

하우스콘서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긴 호흡’이다. 긴 호흡은 쉽게 말하면 좀 더 크고 멀리 내다본다는 말인데, 공연으로 이야기하자면 하나의 작은 공연이 훗날 어떤 큰 강을, 또 바다를 이루게 될지 생각한다는 의미다. 하우스콘서트는 21년간 그렇게 만들어져 왔다. 마찬가지로 실력 있는 연주자를 만나 인연을 맺을 때 역시 긴 호흡으로 그 성장 과정을 지켜본다. 지켜본다는 말이 좀 머쓱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렇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하우스콘서트에서 연주한 김선욱은 긴 호흡으로 우리와 함께한 대표적인 연주자다. 국제 콩쿠르 우승 이후 세계적인 연주자의 반열에 오른 지금에 이르기까지 피아니스트로, 지휘자로 끊임없이 진화해 온 그의 성장사를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누구보다 가장 큰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왔다. 그리고 나는 그 긴 과정 속에서 하우스콘서트를 통해 연주자를 발굴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등용문의 의미를 넘어서는, 한 사람의 삶이 우리와 연결되는 거대한 작업이었다.

통영의 미풍을 맞으며, 작은 초등학생이 굵직한 음악제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까지 그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본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인 또 한 사람의 삶이 우리에게 들어왔다. *제609회 하우스콘서트 실황 (한재민의 첫 하우스콘서트 솔로 리사이틀)


*음악방송 소심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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