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철학책인가 과학책인가

[arte] 강영특의 탐나는 책(2)

아닐 세스 지음
장혜인 옮김
(흐름출판,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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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편집자가 반기지 않을까. 연구의 최전선에서 대단한 성과를 내고 있는 새 저자가 직접 쓴 교양서, 게다가 자신의 고유한 관점과 생각이 담긴 책이라면. 원서 출간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의식과학 책, 영국의 신경과학자 아닐 세스의 <내가 된다는 것(Being You)>을 이참에 읽어본다.

의식이란 것은 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의식 경험은 어떻게, 어떤 형태로 구조화되며, 의식의 다양한 현상학적 속성은 (몸속에 체화되고 세상에 내재한) 뇌의 속성과 어떻게 관련될까? 원대한 물음을 다루는 이 책의 주요 주장 중 일부를 적어본다.먼저 지각에 관하여. 지각은 개별 감각기관에서 중앙의 뇌를 향하는 방식(상향식)보다는 하향식으로 이루어진다. 무슨 말인가. 뇌는 감각신호의 원인에 대해 나름의 ‘예측’을 만들어내고, 이 예측을 지각의 원인인 외부 사물과 연결짓는다. 예측에 오류가 있다면 이를 알리는 신호들이 다시 상향식으로 올라오며, 뇌는 일종의 베이즈 추론과 같은 보정 과정을 통하여 감각 원인에 대한 더 나은 예측을 내놓는다.
지각은 이러한 예측오류 최소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뇌는 일종의 ‘예측기계’다. 우리가 지각하는 것은 감각신호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해석이고, 지각이 이렇게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제어된 환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걸 환각이 아니라 진짜라고 경험하는 까닭은, 무엇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인식해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효과적이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각의 목적은 행동을 이끌어내 유기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데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 역시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몸의 생존을 위해 자신을 제어하고자 자기를 지각한다. 주변 세상과 자신에 대한 의식적 경험은 살아 있는 ‘신체와 함께, 신체를 통해, 신체 때문에’ 일어난다. 데카르트가 동물에게 의식이 있음을 부정하며 사용했던 것과 반대의 의미에서 인간은 ‘동물기계’다. 동물적 본성에 비추어보지 않고는 의식적 경험의 본질과 기원을 이해할 수 없다. 의식이 있다는 것은 지능보다는 생명과 더 관계된다. 지능이 낮은 단순한 생물 종에게도 의식이 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지만, 고도로 발달한 AI(인공지능)에게 의식이 있으리라고는 말하기는 어려운 이유다.자기동일성 물음을 비롯해, 인식론과 현상학 등 철학에서 다루던 물음이 과학의 탐구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 책 또한 이론신경과학이라 할지 실험의식철학이라 해야 할지, 철학과 신경과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심오한 논의를 펴는데, 기존 이론을 하나하나 검토하고, 그렇게 골라내거나 변형한 이론의 블록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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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선생님이 종종 하셨던 말씀이 읽는 내내 떠올랐다. “자를 대고 밑줄을 그으며 읽어야 한다. 그래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첫머리에 등장하는 의식의 ‘현상성’에 대한 언급을 비롯해 두어 번 밑줄을 그으며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들이 출몰하지만, 잘 쓰인 책이라는 느낌을 부정하긴 어렵다. 섬망에 들었던 어머니, 자신의 환각제 복용 경험, 랩에서 개발한 환각 기계로 본 세계 등 다양한 실험과 일화도 곳곳에서 등장한다. 동물의 의식과 기계의식을 다룬 마지막 두 장의 논의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의식과학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두고두고 참조할 중요한 책일 텐데, 참고문헌과 찾아보기가 있었다면 확실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 분야에 정통한 누군가가 이 책으로 강의를 제공한다면 듣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영미권에서 성공한 대중서에 대해 갖는 ‘쉽고 친절한 설명’에 대한 기대없이, 치열하게 맞부딪치는 사유의 전장에 자신을 밀어넣고 싶은 독자에게 권한다. 이 멋지고 아리송한 책에 대한 다른 이들의 소감을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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