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는 잠

[arte] 김리윤의 부드러운 재료
당신은 잠에서 도망치듯이 다른 잠을 향해 가는 방식으로만 잠들 수 있지요. 선생님, 저는 당신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눈입니다. 무례를 용서하세요. 저 역시 이 해변의 많은 이들처럼 집에서 멀어진 몸을 햇볕 아래 마구잡이로 던져놓고 녹아내리도록 가만히 두었을 뿐입니다. 뜨거운 모래알 사이로 흐르고 달라붙어 뒤엉키며 데워지는 몸을 느끼는 것이, 느낌도 희미해지고 종국에는 몸이 있었다는 기억마저 잊어버리는 일이 한심스럽고 좋았어요.

그리고 덩그러니 남겨진 두 눈이 데구룩 데구룩 모래 위를 구르다가 선생님의 손에 부딪힌 것이었지요. 조금 그을린 듯한, 축 늘어져 있던 손가락은 시선에 반응하듯 별안간 이상한 박자로 움직이기 시작했고요. 그것은 움직임이라기보다 깜빡임에 가까운 동작이었어요. 선베드 끝자락에 걸쳐진 그 손가락은 빗방울이 창문을 건드리듯 조심스럽게 허공을 두드리며 깜빡였지요. 허공이란 아주 깨주기 쉬운 물질인 것처럼 조심스럽게, 그러나 손상되지 않은 허공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려 주길 바라는 것처럼 분명하게요. 그 손가락이 건드리고 있는 것이 당신의 잠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물론 선생님의 손가락 역시 저처럼 최선을 다해 집에서 멀어진 사람이 데려온 물질이라는 것은 보자마자 알았지요. 그런 것을 알아채는 데는 생각도 몸도 필요하지 않은 법이니까요. 최선을 다해 집에서 멀어진 사람들의 몸이란 어설프게 노끈으로 동여맨 헝겊 꾸러미 같은 것이기 때문일까. 멋대로 흩어지고, 분실되고, 너덜거리고, 한 조각이 빠져도 즉시 그것을 잊어버리고, 온전한 형태가 희박해지고, 일부를 줄줄 흘리면서도 잘 걷는 손에 자신을 내맡긴 채 운반되기 때문일까. 그 손은 이런 방식으로 당신을 들고 걷는 무심하고 믿음직한 몸 같기도, 헝겊 뭉치를 빠져나와 제멋대로 배회하며 휴양지를 떠도는 작은 새 같기도 했지요. 종잡을 수 없는 방식으로 동작하는 새.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새. 너무 소심해서 다른 허공을 건드릴 때는 더 미미하고 괴상한 박자로 움직이게 되는 새.

영원은 동사로서 순간들을 떼어낸다.1) 당신의 손가락은 제게 그렇게 보였습니다. 동사로서, 순간들을, 떼어내는 영원. 그 손가락은 잠과 잠 사이의 순간들을 떼어내듯이 당신 잠의 눈꺼풀을 밀어 올렸지요. 그리고 그 조그마한 틈새로 유입되는 분량의 빛. 언제나 틈새가 아닌 틈새 바깥 세계의 크기로 들이닥치는 빛. 그 거대함이 매번 당신을 얼마나 놀라게 하는지. 그것을 상대하는 일이 당신을 얼마나 피로하게 하는지. 당신은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나지만 당신 얼굴은 피로와 한 덩어리로 엉켜 있고, 피로 외의 다른 감정들은 수증기 입자처럼 미세하게 표면에 맺혀 있을 뿐이라 식별하기 어렵지요.

녹아서 작고 납작한 덩어리가 된 플라스틱 물통 같은 것을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그런 얼룩덜룩한 덩어리로 무방비한 웃음소리 속에, 달뜬 공기에 섞인 음악들 가운데에, 뜨겁고 맑은 햇빛 아래에, 그을린 피부에 맺힌 땀방울 사이에, 술에 취한 사람들의 걸음걸이 곁에 가만히 놓여 있기 위해 여기까지 왔군요. 휴양지의 여름과 여름의 부산물들이 당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얼룩덜룩한 덩어리로 섞어놓기를 기대하면서. 모든 순간들을 떼어내며 덩그러니 놓인 영원이 되지 않기 위해 여기까지 왔군요.선생님, 당신은 잠에서 도망치듯이 다른 잠을 향해 가는 방식으로만 잠들 수 있지요. 당신에겐 도망치는 것만이 잠을 감당할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도망치는 자들에겐 목적지가 중요하지 않은 법이니까요.

잠은 집과 같다. 잠에서 도망친 사람들은 집에서 도망친 사람들이다. 도망은 자발적으로 분실물을 만드는 일이다. 잠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리고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아무 장소나 집으로 만들어 버리게 마련이지요. 눈 닿는 모든 장소를. 몸이 흩뿌려진 모든 시간을. 떠나온 장소도, 도착할 장소도 중요하지 않고 떠나왔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상태. 떠나왔다는 사실만이 남겨진 상태. 막춤처럼. 손이 제자리를 떠나고, 팔다리가 제자리를 이탈하고, 머리가 제자리를 잊어버리고, 흥청망청, 비틀비틀, 갈 곳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있던 곳으로부터 멀어지는 상태. 여전히 몸통에 붙은 채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격렬하게. 깜빡이는 손가락처럼, 손가락만 남은 것처럼 깜빡이며.

우리는 춤을 추며 장소를 이탈하며 시간이 고이는 부분을 거부하며 여기까지 왔군요. 춤을 추게 만드는 깜빡이는 조명 아래서만, 불가역적으로 깜빡이는 빛 아래서만, 이 깜빡임이 만드는 줄임표 안에서만, 쉴 새 없이 난입하는 어둠 속에서만, 어둠에 적응해야 할지 환함에 적응해야 할지 판단할 수 없는 시각 속에서만 드러나는 형상이 있군요. 저는 제가 알던 어떤 사람보다 더, 제가 겪은 어떤 장소보다 더 당신을 분명하게 보고 있어요. 기억과 마찬가지로 얼굴 역시 원본을 연상시키는 어렴풋한 형태일 뿐이라고 해도, 저는 보고 있어요. 살면서 제가 했던 어떤 일보다 성실하고 꼼꼼하게요. 깜빡이는 불빛이 만드는 기이한 줄임표 안쪽에서, 검고 둥근 테두리에 등을 기대고 서서, 마침내 가까워진 당신을. 도망갈 곳도 없이, 녹아서 엉킨 물질들을 떼어내기와 나뒹구는 파편들을 기워내기를 반복하면서. 보고 있어요. 당신의 얼룩덜룩한 얼굴을. 제 얼굴로 얼룩진 당신의 얼굴인지, 당신의 얼굴로 얼룩진 제 얼굴인지 모를 얼굴 하나를. 서로를 껴안듯이 얼룩진 형상 하나를.
※※※


당신은 딱 한 번 잠들고 여러 번 깨어나지. 내 사랑, 당신이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을 상상해. 기나긴 잠 같고 잠과 잠 사이의 적막 같은 무수한 구멍들로 이루어진 당신의 삶과 그 속의 작은 구멍 하나를. 그날은 묵직하고 커다란, 아주 짧은 굉음이 당신의 잠에 구멍을 냈다고 했지. 쿵, 쾅. 둘 중 어느 쪽에 가깝건, 어느 쪽에도 가깝지 않건 말건 당신은 방금 들은 소리를 한 음절의 글자로 기억했을 거야. 혹은 당신이 방금 ‘쿵’ 하는 굉음과 함께였다고 그 깨어남을 기억했겠지. 습관처럼. 당신의 생각이 그 소리를 복기하기 전에, 당신의 의식이 그 소리를 재현하려 애쓰기도 전에.

소리의 세부를 하나하나 복원하려 애쓸수록, 당신이 들었던 소리를 바로 그 소리 자체가 아닌 무언가로 재현하려 애쓸수록 알게 되지. 소리처럼 그 자체를 보존하고 끝없이 재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소리만큼 원본을 연상시킬 수 있는 형태로 재현이 불가능한 물질도 없다고. 사실과 재현 사이에 텅 빈 간격만이 존재하는 것. 불완전하거나 실패한 재현조차 존재할 수 없는 것. 당신은 그 텅 빈 곳에 소리에 대한 기억과 함께 앉아있지. 당신의 방은 안도 없고 밖도 없는 듯한 어둠에 잠겨 있고, 당신은 어둠에 잠긴 사물들을 기억으로 비추듯이 건져 올려.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사물의 표면을 더듬으며 움직이네.그런 어둠 속에서도 나는 당신의 형상을 어렵지 않게 분간해 낼 수 있어. 당신은 질료가 아니라 진동으로 구성된 사람처럼 존재하니까. 어둠 속에서 가늘게 떨리는 당신의 표면을 보고 있어. 언제나 잠든 사람의 얼굴이 가장 연약한 물질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 표면을 가만히 응시하는 동안 깨달았지. 깨어 있는 사람의 얼굴이야말로 비할 데 없이 연약한 물질이라는 걸. 이미 깨져있어서 너무 많은 틈새를 가졌거나 작은 새의 부리가 툭툭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산산조각 날 수 있는 물질. 당신은 모래 속에 섞인 얼굴의 파편들을 주우러 다니는 사람처럼, 깨진 틈새로 흘러든 망령들을 감당하는 몸처럼, 조각난 표면을 수선하는 손처럼 세계를 서성여. 사실과 재현 사이의 텅 빈 간격을. 그 간격에 듬성듬성 놓인 기억들을. 구멍 난 장소를. 안팎 없는 구멍을. 구멍이라 생각했던 곳이 사실은 진흙인, 발이 푹푹 빠지는 땅을.

안으로 말린 것만이 밖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깨어 있는 사람도, 꿈꾸는 사람조차 견뎌 낼 수 없는 심리적 역동성인 악몽이 있다면. 그것이 꿈꿀 겨를도 없는 깊은 잠에 빠진 사람만이 견뎌낼 수 있는 역동성이라면.2)

당신의 기다랗고 팽팽하고 얇고 약한 잠에 뚫린 구멍들을 생각해. 당신이 꿈꾸는 법을 잊은 듯이 잠들었으면 좋겠어. 경험이 없는, 기억을 훼손하지 않는, 당신의 머리맡에 잠으로서의 경험만 드리웠다 아침이면 거둬가는 잠. 아무것도 견뎌내지 않는 잠. 잠이라는 경험을 아늑하게 덮고 두 손을 이불 밖으로 내민 당신의 이마 위로 쌓이는 잠을 생각해. 아무것도 없는 잠도 경험이 될 수 있을까. 그 경험이 당신의 기억을 돌볼 수 있을까. 당신이 자신을 돌보는 방식이 될 수 있을까. 당신이 더는 잠을 통해 망각에 저항하지 않고, 깨어남을 통해 기억에 저항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잠과 깨어남 사이의 벌어진 틈새를 액체처럼 배회하는 당신. 나는 피로를 잊은 사람처럼 당신이 가진 구멍들을 쓰다듬고 있어. 안팎이 아무리 똑같이 캄캄하다 한들 그것이 구멍이라는 것을 숨길 수는 없겠지. 구멍은 무엇을 줄줄 새게 할 수 있고 무언가를 유입시킬 수도 있고 무엇을 잘 끼워서 잃어버리지 않게 보관할 수도 있는 공간이지. 언젠가 당신은 곤히 잠든 이에게 세상 모른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참 좋다고 했어. 잠든 사람은 기억을 날카롭게 휘저어 놓는 경험, 해로운 경험3), 그 자체로 동사를 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경험이라는 단어로부터 격리되어 있다고.

내 사랑, 당신은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어. 갓 태어난 새 떼처럼 소란스럽게 경련하는 기억들 곁에서. 그것들은 통제할 수 없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지나치게 가느다란 뼈를 가졌지.


※※※


아가, 너는 매일 밤 몸을 버린 것처럼 세상 모르고 잠들지. 나는 매일 새롭게 깨어나는 법을 알려준다. 너의 연약하고 얇은 눈꺼풀이 어쩜 그렇게 거대한 것을 밀어두며 모르는 것으로 남겨놓을 수 있는지. 하지만 조심해. 지금부터 그렇게 조그만 틈새로도 그렇게 거대한 것이 밀려온다. 너를 매번 놀라게 하는, 너를 제외한 모든 것일 뿐인 세계. 너는 곧 눈을 깜빡이겠지. 너의 표면은 아주 조그마하고 가끔 열리는 틈만을 허락하지만, 액체에게 입구의 크기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미동 없는 너의 손가락 위로 피부 바깥의 모든 것, 그러니까 세계라고 할 수 있는 것, 커다란 아침의 빛이 밀려드네.

나는 세계보다 먼저 너의 잠을 깨우려 한다. 작은 물방울 하나가 내 손끝에서 네 손끝을 향해 떨어지기를 가만히 기다린다. 너의 손가락이 눈꺼풀보다 먼저 깜빡이기를. 새 몸을 얻게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4) 아무리 아름다워져도 알아볼 수 있다. 아무리 아름답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지. 기다린다. 본다. 작은 물방울이 얼마나 빠르게 무거워지는지. 새 몸으로 기우는 동안 어떻게 무게라는 방향을 갖는지.




이 글에 포함된 세 통의 서신은 세 편의 영화에서 각각 한 장면씩을 재료로 작성한 것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는 다소 무관할 수 있으며, 영화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샬롯 웰스 '애프터썬' (2023)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메모리아' (2022)
루이스 파티뇨 '삼사라' (2023)


1) 에드몽 자베스 <질문의 책>, 이주환 옮김, 한길사, 2022.
2) “오로지 퇴화를 겪은 것만이 진화하고, 말하자면 안으로 말린 것만이 밖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악몽은 아마 깨어 있는 사람도, 심지어 꿈꾸는 사람조차 견뎌 낼 수 없는 어떤 심리적 역동성일 것이다. 그것은 단지 꿈꿀 겨를도 없는 깊은 잠에 빠진 사람이 견뎌 낼 수 있는 역동성이 아닐까?”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김상환 옮김, 민음사, 2004.
3) “경험은 해로워요. 내 기억을 날카롭게 휘저으니까요.” 영화 '메모리아'(아핏차퐁 위라세타쿤, 2022) 중 에르난의 대사.
4) “이미 죽은 몸이 뭘 할 수 있을까. 새 몸을 얻게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영화 '삼사라'(로이스 파티뇨, 2023) 중 소년이 할머니에게 읽어주는 책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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