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동차업계 '테슬라 쇼크'…전기차 전환 가속페달

KOTRA가 본 해외시장 트렌드

도요타 새 사장 "전기차 퍼스트"
혼다는 2040년 '탈엔진' 목표
마쓰다·스바루, 전동화 투자 확대
강민정 일본 나고야무역관 차장
지난 2월 말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도요타자동차의 국내외 주요 납품처가 한자리에 모인 총회가 열렸다. 도요타 공급망의 결속을 도모하는 데 중요한 자리였다. 이번 도요타 공급업체 컨벤션은 4년 만의 대면 개최로 더욱 뜻깊었다. 1월 새롭게 발탁된 사토 코우지 사장뿐 아니라 직전 사장이었던 도요다 아키오 회장, 700여 명의 도요타 간부와 공급처 간부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창업주 4세인 도요다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에 익숙한 관계자들은 젊은 53세 엔지니어 출신 신임 사장이 이끄는 새로운 도요타를 엿보기 위해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최근 도요타 경영진의 행보에 더욱 눈이 가는 것은 일본 자동차산업에 드리운 위기감 때문이다. 반도체 부족에도 글로벌 판매 1위를 수성한 도요타의 일본이 위기라는 것은 어불성설처럼 들린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도 EV(전기차) 대응이 늦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위기감이 피부로 와닿은 것은 2022년 3분기 테슬라의 순이익이 도요타를 넘어서면서다. 도요타 판매 대수가 테슬라의 여덟 배인 점을 고려하면 테슬라 한 대당 이익이 대략 도요타 여덟 대와 같다는 뜻이다. 관망하는 자세가 두드러졌던 일본 자동차업계는 분주히 미래 계획을 발표하며 변화를 도모하기 시작했다.변화의 향방을 가늠해보자면 우선은 ‘EV 퍼스트’ 전략이다. 도요다 회장은 자신이 있는 한 ‘자동차 회사’를 벗어나기 어렵다며 스스로 사장직에서 내려왔다. 자연스레 사토 차기 사장은 EV 퍼스트 전략을 앞세우며 EV 전용 플랫폼 개발을 발표했다. 다만 대외적으로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전방위’ 전략을 고수하고 있어 북미, 유럽 등 시장에 따라 EV 대응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혼다는 더욱 적극적이다. 2040년부터 모든 신차를 EV와 FCV(Fuel Cell Vehicle)로 발매하는 ‘탈엔진’을 목표로 내걸었다. 마쓰다 역시 전동화에 1조5000억엔을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했고, 스바루는 EV 전용 신공장 건설을 계획하는 등 일본에도 전동화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고 있다.

두 번째 변화는 차종 감소와 소프트웨어 강조다. 사토 사장은 이번 총회에서 다양한 차종(하드웨어)을 출시하기보다 차종은 집약하되 더욱 개인화한 소프트웨어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했다. 혼다 역시 40종이 넘는 차종을 절반인 20종으로 줄일 예정이다. 자동차에서 모빌리티로 전환하려면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산 방식 변화다. 미국의 한 언론은 2월 말 도요타 생산 관계자가 테슬라 모델Y 내부를 해체해보고 놀라워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생산방식의 카이젠(개선)을 거듭해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해온 도요타지만, 혁신적인 테슬라 차량 속을 확인한 뒤 ‘예술품’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사토 사장은 이번 총회 뒤 인터뷰에서 공급사에 생산 방식 변화도 주문했다. 기존 개별 부품 차원의 카이젠보다 전체 최적화를 앞세운 매크로 뷰를 강조한 것이다. 가늠하건대 새로 개발할 EV 플랫폼은 ‘개선’이 아니라 ‘혁신’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탄탄한 글로벌 성적표와 든든한 내수시장, 무엇보다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일본 자동차지만 위기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 최초로 무선 인터넷 휴대폰을 만들고도 애플과 삼성에 내준 스마트폰의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자동차 대국 일본의 변화가 시작됐다. 이런 변화에 주목하며 우리 기업들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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