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금융경쟁력 높여야 5만弗 시대 앞당긴다

4대 금융지주 총순익 늘었지만
美 JP모간 한 분기 수익 불과

튼실한 은행은 위기 상황 '안전판'
금융산업 역동성·창의성 살려야
추락한 잠재성장률 반전 가능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前 금융위원장
지난주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은행(SVB) 도산 파장이 심상치 않다. 2008년 이후 최대 규모의 미국 은행 파산이라는 SVB 충격파로 뉴욕증시가 급락하고 투자자 공포와 금융시스템 불안이 커지고 있다. 미국 20대 은행 중 하나인 SVB의 파산은 금리 급등으로 인한 벤처기업 자금 유입 급감과 채권투자 손실 등 재무 상황 악화로 빚어진 대규모 예금 인출(뱅크런) 사태가 도화선이 됐다.

이런 와중에 국내에서는 종류가 다른 금융권 소용돌이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 역대 최대 수익에 과도한 성과급과 억대 평균임금 등 은행들의 ‘돈 잔치’ 논란으로 금융권이 뭇매를 맞고 있다. 이자수익 비중이 90%가 넘는 은행에 대한 여론의 질타와 당국의 채찍도 예사롭지 않다. 금융업은 ‘고객의 돈으로 장사’하는 비즈니스로 소비자 보호와 사회적 책임 또한 중요한 만큼 금융은 전 세계 예외 없이 공공성을 가진 대표적 규제산업이다. 경제가 몸이라면 심장과 혈관 기능을 하는 금융 시스템이 잘못되면 국가 경제와 국민 전체가 고통과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은행권 때리기는 잦은 사고, 불완전 판매 관련 소비자 피해, 그리고 내부통제 시스템 취약성 등 은행 스스로가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다고 볼 때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대응은 당연하다. 그러나 4차 기술혁명과 경제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오늘날, 금융을 역동적 산업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경영 자율성도 부여해야 한다. 은행의 공공재적 기능과 민간기업의 자율성이라는 두 바퀴가 잘 굴러가야 국가 경제를 위한 금융의 순기능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다.

다음주 미국 중앙은행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이 예상되면서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도 가시권에 들어온 가운데 대출금리 인하 압박을 받는 은행권의 입장은 난감하다. 고금리·저성장 시기에 기업과 가계의 부채 상환 부담을 줄이려는 당국의 노력은 이해하더라도 노골적인 개입은 시장의 가격결정 시스템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 국내 은행그룹의 절반 이상 최대 지분을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들도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국내 금융주 저평가 원인 중 하나로 규제와 정책의 낮은 예측 가능성이 꼽히는 것은 문제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 걸맞지 않게 제조업 대비 낮은 국내 금융산업의 규모와 경쟁력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사실상 지난해 국내 4대 금융지주 연간 총순이익 16조원은 미국 최대 은행 JP모간의 한 분기 수익 정도다. 기업가치 평가 지표인 주가순자산비율(PBR)도 국내 은행 평균(0.4)은 주요국의 바닥권이고, 미국 은행 평균의 4분의 1 수준이다. 최근 국내 4대 금융지주 시총 합계는 약 60조원으로 JP모간의 4000억달러(약 520조원)에 비해 턱없이 작고, 싱가포르 최대 은행 DBS의 80조원에도 미치지 못해 국내 은행산업의 허약한 현주소를 보여준다.2017년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연 우리나라는 지난 정부 5년간 정체돼 아직 3만달러 초반에 머물고 있다. 과거 미국 일본 등은 5년 만에 3만달러에서 4만달러 시대로 올라섰고, 스페인 그리스 등은 3만달러를 찍고 뒷걸음친 나라들이다. 실패한 국가들의 공통점은 방만한 재정 운영과 취약한 금융산업이었다. 국민소득 ‘3만불 함정’에서 벗어나 5만불 시대를 앞당기려는 현 정부의 미래 비전이 실현되려면 국내 금융 경쟁력을 높이고 국제 금융허브 역량을 키워야 한다.

작년 국민소득 10만달러를 넘어 과거 식민 통치를 한 영국의 두 배로 키운 아일랜드의 기적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15년 전 침체에 빠졌던 아일랜드는 투자 촉진과 첨단기업 유치를 위한 규제 완화, 법인세 인하, 생산적 노사관계 정착, 그리고 금융산업 선진화를 국제 경쟁력 강화의 핵심 전략으로 삼아 5만달러 시대를 열었고 글로벌 기술 허브 국가로 떠올랐다.

국내 잠재성장률 추락을 반전시키려면 금융 기업의 역동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시장경제가 완전치는 못해도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득보다 실이 크다. 당면한 살얼음판 경기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잠재 부실 등 하방 리스크를 고려하면 은행의 재무 건전성 강화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지난해 역대급 수익은 오히려 다행스럽다. 튼실한 은행은 금융 시스템의 안전판이고 그것이야말로 은행의 일차적 공공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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