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57회' 납세자의 날, '56주년'이기도 하죠

'회(回)'는 차례나 횟수를 나타내는 말로 '번째'와 같은 뜻이다.시작하는 해를 1회로 친다. '주년(週年)'과 돌은 '만(滿)' 개념이라 한 해가 꽉 찬 뒤에야 비로소 1주년(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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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월 3일은 제57회 ‘납세자의 날’이다. 이날 배우 김보성 씨를 비롯해 김수현, 송지효, 임원희 씨 등이 아름다운 납세자와 모범납세자로 선정돼 상을 받는다고 한다. 정부는 국세청이 발족(1966년 3월 3일)한 이듬해부터 이날을 ‘조세의 날’로 정해 매년 기념해오고 있다. 2000년부터는 납세자가 주인이라는 의미에서 명칭을 ‘납세자의 날’로 바꿔 기념식을 열고 있다.

태어난 지 1년 지나면 비로소 1주년

이때 쓰인 ‘회(回)’는 차례나 횟수를 나타내는 말로 ‘번째’와 같은 뜻이다. ‘회/번째’는 시작하는 해를 1회로 해서 따지기 때문에 나이로 치면 ‘세는나이’, 즉 한국식 나이를 셈하는 방식과도 같다. 1967년 제1회 납세자의 날 행사를 치렀으니 2023년 올해가 ‘제57회’다.이를 ‘주년’으로도 나타낼 수 있다. ‘주년(週年)’은 1년을 주기로 돌아오는 돌을 세는 단위다. 이때는 셈법이 달라진다. 주년과 돌은 ‘만(滿)’ 개념이라 한 해가 꽉 찬 뒤에야 비로소 1주년(돌)이 된다. 가령 2022년 3월 10일 OO포럼이 발족했다면, 그 이듬해인 2023년 3월 10일이 ‘포럼 출범 1주년’이다. 이를 자칫 출범 2주년이라고 하면 틀린 표현이니 주의해야 한다. ‘주(週)’는 돌아오다, 되풀이하다란 뜻이다. 1년 만에 다시 돌아온 행사이니 다음해가 1주년이다.

마찬가지로 납세자의 날은 1967년 처음 생겼으니 2023년인 올해는 ‘제56주년 납세자의 날’이다. 이를 납세자의 날이 생긴 지 ‘만 56년이 됐다’고도 한다. 주년과 돌은 같은 말이라 제56돌이라고 해도 된다. 정리하면, 첫해에 제1회 행사를 치렀다면 그 다음해는 제2회 행사가 되고, 이때 비로소 행사 1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세종대왕이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한 것을 기념해 제정한 한글날을 2023년에 ‘제577주년(돌)’이라고 셈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회’와 ‘주년’의 차이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특정 기념일을 따질 때 자칫 크게 실수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2013년 ‘무역의 날’ 행사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회’와 ‘주년’을 혼용해 쓰면 안돼

‘무역의 날’은 애초 ‘수출의 날’로 시작했다. 1964년 11월 30일 우리나라가 수출 1억달러를 달성한 것을 기념해 제정했다. 그해 제1회 수출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1965년 제2회 수출의 날을 지냈고, 이때가 ‘수출의 날 1주년’이었다.1990년 명칭을 ‘무역의 날’로 바꾸었다. 무역의 날이 지금같이 12월 5일로 정해진 계기는 2011년에 있었다. 그해 12월 5일 한국이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한 것이다. 정부는 이를 기념해 이듬해인 2012년부터 이날을 무역의 날로 정해 매년 기념해오고 있다.

2013년은 ‘제50회 무역의 날’이었다. 주년으로 치면 ‘제49주년’이다. 하지만 정부 행사를 비롯해 여러 언론에서는 이를 ‘무역의 날 50주년’으로 전했다. 주년은 1년 뒤 돌아오는 날, 즉 ‘만’ 개념으로 따지기 때문에 사실은 2014년이 무역의 날 50주년이었다. 이는 마치 1945년 광복을 맞은 우리나라가 2024년에 광복 80주년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 잘못된 셈법이다.

‘회’와 ‘주년’을 구별하지 않고 동일시하는 오류는 지금도 여전하다. 2022년은 제59회 무역의 날이었는데, 지난해 무역협회는 공지문에서 ‘무역의 날 59주년을 맞이하여…’라고 했다. 무역의 날은 올해 60회를 맞지만, 주년으로는 2024년이 돼야 60주년이다. ‘주년’과 비슷한 형태인 ‘주기(週期)’도 함께 알아둘 만하다. “3년 주기로 이사를 다녔다”처럼 쓰는 이 말은 어떤 일이 반복되는 기간을 뜻한다. 간혹 이를 “3년 터울로 이사를 다녔다”고 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저널리즘 글쓰기 10원칙' 저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터울’은 원래 ‘같은 터에서의 울타리’라는 뜻으로, 어떤 경계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때의 ‘터’는 집이나 건물을 짓는 자리로, 일본식 한자어 ‘부지’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이다. ‘울’은 풀이나 나무 따위를 얽어서 담 대신에 경계를 지어 막는 물건, 즉 울타리다. 여기서 의미가 변해 지금은 ‘한 어머니에게서 난 형제간 나이 차이’를 이르는 말로 쓰인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학교 선배인 그와 나는 나이가 3년 터울이다”란 말도 틀린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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