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소년'이 차려낸 日 규슈 '바다 한상'

김혜준의 아트 오브 테이블
(1) 오사카 다카다 유스케 셰프

규슈의 작은섬 아마미 태생
오사카 요리학교·프랑스 거쳐
2010년 일본서 '라 심' 열어
6년 만에 미쉐린 2스타 따내

시그니처는 '부댕 도그'
프랑스식 한입 크기 소시지
식용 대나무 숯으로 만든
검은 컬러 입힌 튀김 일품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프렌치 레스토랑 ‘라 심’.
하늘길을 오가는 일이 다시 잦아졌다. 다이닝 레스토랑 브랜딩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를 어떤 이들은 ‘맛을 좇는 여행자’ 정도로 생각한다. 약간의 부러운 시선도 더해진다. 최고의 레스토랑을 만들어가는 일은 늘 적당한 스트레스와 적당한 즐거움이 동반한다. 한 끼 식사가 인생의 명작을 만난 것 같은 순간들을 만들기 위해 나는 오늘도 세계의 레스토랑을 탐험한다.

어느 도시, 어느 장르의 요리이든 사전 정보 수집은 최소화한다. 실제 플레이트를 마주한 순간부터 스스로에게 솔직한 감흥과 전해지는 감동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커트러리, 플레이트, 홀의 인테리어, 키친 투어를 통한 키친의 형태와 동선, 오퍼레이팅. 이 모든 것은 완벽한 레스토랑을 매만지기 위해 필요한 살아있는 레퍼런스다. 어떤 요소 하나라도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 레스토랑과 셰프가 만들고 싶고, 전하고 싶은 이야기다. 그것이 녹아든 요리와 함께 곁들이는 주류, 사람의 손으로 건네는 호스피탤러티, 즉 환대의 매너가 좋은 밸런스로 정확한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순수한 마음으로 흠뻑 받아들일 수 있는 손님들의 마음까지.
일본 교토에 갈 때마다 오사카에서 꼭 반나절이라도 머물게 만드는 ‘프렌치 레스토랑’이 있다. 프랑스어로 ‘꼭대기’를 의미하는 단어, 라 심(La Cime). 라 심은 이 공간을 방문하는 고객, 요리와 공간이 삼위일체로 균형 잡힌 삼각형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레스토랑은 홀 테이블이 단 4개, 6인이 들어갈 수 있는 룸 1개가 전부다. 이 작은 레스토랑의 기둥은 다카다 유스케 셰프(사진)다. 오사카의 수많은 먹거리 틈에서 모던하고 단아한 프렌치 레스토랑을 발견한 건 벌써 몇 년 전. 완벽에 가까운 소스의 표현과 색다른 재료 선택을 하는 셰프가 궁금했다.

그의 고향은 오사카가 아니라 규슈의 작은 섬이다. 아마미 섬에서 아름다운 바다 빛과 조용히 흐르는 시간을 친구 삼아 살아온 소년은 미쉐린가이드 2스타를 받았고,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에서도 6위에 자리잡고 있는 스타 셰프로 성장했다. 다카다 셰프는 오사카의 유명 요리 학원인 쓰지교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요리에 인생을 던졌다. 2010년 일본으로 돌아와 라 심을 열었고, 2년 만에 미쉐린가이드 별을 따는 쾌거를 이뤘다. 그의 요리는 많은 이를 매료시켰고, 라 심은 6년 만에 2스타를 따냈다.

라 심은 요리와 와인의 페어링 조합이 중요한 레스토랑이다. 다카다 셰프가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울 때 특히 소스 파트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다채로운 식재료, 그리고 그중 고향인 아마미 섬의 생선과 채소들을 사용할 때 곁들이는 소스의 무게감과 향, 풍미가 수려하다. 그는 본질적인 식재료에서 나오는 맛을 끌어내는 것을 중요시한다. 요리사로서 그의 철학은 “요리할 때 식재료의 소리를 듣고 본연의 맛에 집중하는 일”이라고 했다.
시그니처 메뉴로 알려진 ‘부댕 도그(Boudin Dog)’는 코스의 시작을 알리는 시크한 검은색의 작은 볼 형태다. 식용 대나무 숯으로 검은 컬러를 입혀 손가락으로 집어 한입에 맛볼 수 있는 부댕 누아 튀김이다. 프랑스식 소시지를 한입 크기로 만들고 얇은 스킨을 입힌 뒤 다시 색을 입혀 튀겨낸 요리다. 보이는 것보다 더 손이 많이 가는 섬세한 구성이 돋보인다.

이 메뉴를 시작으로 계절마다 맛볼 수 있는 식재료들이 코스로 이어지는데 주류는 꼭 와인 페어링을 추천한다. 내추럴 와인과 컨벤셔널 와인들, 특히 와인 리스트가 무척 탄탄한 편이어서 소믈리에의 실력을 엿볼 좋은 기회다. 모든 직원이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도 외국인 VIP가 많은 이유다.

12월 중순 방문했을 당시엔 버섯을 이용한 한입 요리들, 아름답게 피어나는 포르치니 버섯의 향부터 진하게 우려낸 버섯 콩소메 수프, 타르트 등이 입맛을 한껏 돋웠다. 새우 한 마리를 통째로 사용해 새우살에 상큼한 시트러스 터치를 한 세비체, 따뜻한 도넛을 새우 머리 내장에 찍어 먹을 수 있는 플레이트가 인상적이었다. 이어지는 디시는 셰프의 고향인 아마미 섬의 야채를 데치고 그 안에 삶은 전복과 라비올리와 내장 소스를 숨겨뒀다. 지금까지도 완벽한 맛의 레이어드와 식감의 완전체로 기억에 남아 있다.바닷가 소년이어서일까. 그의 해산물 요리는 특별하다. 농어의 익힘 정도는 완벽한 수준인 데다 곁들인 유자 뵈르 블랑 소스의 조화가 감미롭다. 이 위엔 국화 꽃잎을 살짝 얹어 미적인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효고현의 와규가 등장하는 메인 역시 짙은 육향과 부드러운 식감이 인상적이다. 쌀 소스에 일본 순무로 만든 셔벗으로 입을 한 차례 클렌징한 뒤 아름다운 디저트들이 모인 ‘프티 푸르’로 코스를 마무리한다.

어떤 레스토랑은 각각의 메뉴와 기법, 함께한 와인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지 못해도 충분히 그 시간 자체로 멋진 이미지가 남는다. 라 심이 그랬다. 규슈의 작은 섬에서의 감성이 프랑스 감각과 맞물려 오사카라는 대도시의 보석 같은 다이닝을 탄생시켰다. 모던하고 수려한 재패니즈 프렌치의 독특한 매력이 궁금하다면, 계절마다 바뀌는 재료의 맛을 알고 싶다면, 꼭 경험해보길 추천한다.

김혜준 푸드콘텐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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