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로 남기지 않은 증여계약…마음대로 해제할 수 있을까?

김상훈 변호사의 상속인사이드(27)
김상훈 법무법인 트리니티 대표변호사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파트를 주기로 하는 증여계약을 체결하면서 대신 아들이 아무것도 받지 못한 딸에게 현금 1억원을 주도록 약속했다. 부자지간의 약속인 만큼 이러한 내용의 증여계약을 서면으로 작성하지는 않았다. 이에 아들은 아버지와의 약속에 따라 여동생에게 1억원을 주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에게 약속한 아파트를 증여하기가 꺼려졌다. 이것을 증여하고 나면 아들이 나몰라라 할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과의 증여계약을 해제하고자 한다. 이것이 가능할까?
증여의 의사표시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은 경우에는 각 당사자는 이를 해제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다(민법 제555조). 다만 이러한 증여계약의 해제는 ‘이미 이행한 부분’에 대하여는 영향이 없다(제558조).

위 사건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파트를 증여하는 대신 아들이 딸에게 1억원을 주기로 하는 약속은 수증자인 아들에게 일정한 부담을 지우는 부담부증여이다. 그리고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계약은 해제할 수 있다는 규정은 부담부증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제561조).이 사건에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증여계약은 서면으로 작성되지 않았으므로 아버지가 아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 사건처럼 수증자가 이미 부담을 이행한 후에도 증여자가 이행을 완료하지 않는 한 해제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양 당사자간의 균형을 잃은 것이 되어 부당하다.

따라서 제558조의 ‘이행’은 부담부증여에 있어서는 부담의 이행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각 당사자가 해제할 수 있는 것은 양 당사자 모두 이행이 완료되지 않는 사이에 한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어느 일방이라도 이행을 하였다면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고 해석하여야 한다 (곽윤직 편집대표/고영한 집필부분, 민법주해[XIV], 박영사, 50면).
대법원도, 원고가 피고에게 토지를 증여하는 대신 그 토지에서 농사를 짓던 원고의 숙모에게 피고가 300만원을 지급하기로 하는 부담부증여계약을 체결한 후 피고가 원고의 숙모에게 300만원을 지급했는데도 증여계약이 서면에 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고가 증여계약의 해제를 주장한 사건에서 이와 같은 취지로 판단하였다.“부담부증여계약에서 증여자의 증여 이행이 완료되지 않았더라도 수증자가 부담의 이행을 완료한 경우에는, 그러한 부담이 의례적·명목적인 것에 그치거나 그 이행에 특별한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지 않는 등 실질적으로는 부담 없는 증여가 이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각 당사자가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임을 이유로 증여계약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제할 수는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대법원 2022. 9. 29. 선고 2021다299976, 299983 판결).
결론적으로 위 사건에서 아들이 부담의 이행을 완료한 이상 공평의 원칙에 따라 아버지는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

<법무법인 트리니티 대표변호사, 법학박사 김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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