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경제 살리는 구조개혁 시급
'개혁 피로감' 완화해야 성공

국민의 기대와 신뢰 얻으려면
정직한 약속·결연한 행동 등
'정치적 리더십' 보여야

김준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객원교수
윤석열 정부 출범 후 6개월이 지난 지금 학계와 언론은 늙어가는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한 구조개혁에 대해 다양한 주문을 쏟아내고 있다. 거의 20년째 반복되는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규제개혁, 노동개혁, 재정개혁, 연금개혁 등 어느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것을 찾기 어렵다. 심화되는 정치적 분열과 사회적 결속력 약화로 구조개혁을 이뤄낼 우리의 역량이 과거에 비해 후퇴한 건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앞선다.

경제를 넘어 국가 안보에도 중요한 반도체특별법 개정마저 반대하는 거대 야당은 우리 경제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직전까지 버틴다는 벼랑 끝 전술로 막무가내식 힘의 과시를 일삼고 있다.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에 국민만 피멍이 들 것은 자명하다.늦었지만 이제라도 구조개혁에 시동을 걸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국민의 합리적 기대를 유도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구조개혁뿐만 아니라 모든 경제정책도 마찬가지다. 소비, 투자, 생산 등 경제주체의 거의 모든 의사결정이 미래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 현실이다. 실패한 경제정책의 대부분은 국민의 기대가 어떻게 형성될지를 사전에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거나 추진 과정에서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국민의 합리적 기대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구조개혁이 왜 필요하고 국민이 받게 될 손익계산서는 무엇인지에 대해 국민에게 정직하고 소상하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고 하는 것도 사람마다 손익계산서가 달라 사회적 합의가 어렵고 손실은 초기에 집중되는 반면 이익은 나중에 장기에 걸쳐 분산되면서 개혁에 대한 피로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다른 손익계산서 문제는 재정정책을 통해 손익을 최대한 균등하게 배분함으로써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손익의 발생 시점이 달라 생기는 개혁 피로감은 정책적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구조개혁에 대한 국민의 합리적 기대 형성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조개혁이 궁극적으로는 모든 국민에게 순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면 그다음은 금융시장, 특히 자본시장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순익을 현재 가치로 바꾸는 곳이 바로 자본시장이기 때문이다. 구조개혁의 결과로 성장과 소득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곧바로 오늘의 자산가격에 반영되면서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호재로 작용한다. 이런 효과는 개혁 피로감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구조개혁에 대한 합리적 기대 다음으로는 개혁 추진 과정에서 국민의 기대가 허물어지지 않도록 유지·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핵심은 국민과 약속한 개혁정책을 성실히 이행함으로써 신뢰도를 확보하는 것이다.

개혁 성공에 신뢰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기 위해 시계를 40여 년 전으로 돌려보자. 1970년대 중반 400%를 넘는 초인플레이션에 허덕이던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1970년대 후반에 물가 안정을 위한 환율개혁에 착수했다. 두 나라 모두 환율 목표 경로를 사전에 국민에게 제시하고 통화와 재정 긴축을 통해 제시된 목표를 달성해 나간다는 계획이었다.

두 나라 모두 국민의 신뢰가 낮은 상태로 개혁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사뭇 달랐다. 칠레는 환율 목표를 충실히 지켜 확보된 신뢰를 바탕으로 인플레 기대심리와 물가를 동시에 안정시키는 데 성공했다.반면 아르헨티나는 재정적자를 줄이지 못해 개혁 초기부터 환율 목표에서 이탈하면서 물가 안정에 실패했다. 결국 성공과 실패를 가른 것은 개혁에 대한 국민의 신뢰 유무였다.

두 남미 국가의 상반된 경험은 비록 오래전이지만 시공을 넘어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구조개혁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이끌어내는 것은 정치 지도자들의 현란한 수사가 아니라 정직한 약속과 결연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1970년대의 칠레와 아르헨티나 중 어느 나라에 더 가까울까? 절반은 표절이 분명한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는 구호가 그동안 구조개혁이 시작도 못하고 표류한 이유의 가장 압축적 표현이라는 것이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닌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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