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음악으로 푼 파격…'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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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 감독유인원이 동물의 뼈 무덤을 발견한다. 한참 쳐다보더니 굵은 뼈다귀를 골라 든다. 조심스러웠던 손동작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칠어진다. 마침내 손에 든 뼈다귀로 다른 뼈들을 내리치며 포효한다. 뼈다귀를 이용해 다른 걸 부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유인원이 도구 사용법을 깨달은 순간이다. 유인원이 뼈다귀를 허공으로 내던지는 순간, 돌연 길쭉한 우주선이 화면을 채운다.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유인원이 뼈다귀 흔드는 장면서
흘러나오는 슈트라우스 교향시
니체 동명 소설 음악으로 재탄생
'철학의 음악화'에 논란 일자
"인류 발전 음악으로 표현한 것"
큐브릭 감독, 계획했던 곡 대신
파격적인 슈트라우스 음악 삽입
1968년 미국에서 개봉한 SF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 한 장면이다. ‘샤이닝’ ‘아이즈 와이드 셧’ 등을 제작한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대표작이다. 아서 클라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으로 꼽힌다. 인류가 진화를 거쳐 우주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강렬하면서도 효과적으로 표현해 호평받았다.앞서 설명한 유인원이 뼈다귀를 흔드는 모습은 이 영화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꼽힌다. 이때 나오는 배경 음악도 이 모습을 ‘세계 영화사를 빛낸 인상적인 장면’으로 끌어올리는 데 한몫했다. 지금도 많이 사랑받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란 곡이다. 독일 출신 음악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가 작곡한 교향시다. 교향곡은 보통 4악장으로 구성돼 있지만, 교향시는 한 악장으로만 이뤄져 있다. 하지만 그 짧은 선율 안에 서사를 담고 있다.
음악은 어둠을 상징하는 오르간의 낮은 음과 더블베이스의 ‘트레몰로’(떨리는 듯 음을 빠르게 되풀이하며 연주하는 기법)로 시작한다. 그러다 트럼펫, 팀파니 등의 연주로 이어진다. 마침내 해가 떠오르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은 짜릿함을 선사한다. 그런데 곡 제목이 왠지 익숙하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대표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음악으로 재탄생시킨 것. 철학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이 곡을 듣고 처음 알았다.
그는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교향곡, 협주곡, 가곡,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돈키호테> <맥베스> 등 문학 작품도 음악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처음 나왔을 때 큰 논란이 일었다. ‘철학의 음악화’라는 파격적인 시도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슈트라우스는 논란이 일자 이렇게 말했다. “나는 결코 위대한 철학자 니체의 작품을 음악으로 표현하려 한 것이 아니다. 인류가 그 기원에서부터 여러 단계를 거쳐 발전해가는 모습을 음악이라는 수단으로 표현하려고 했다.”큐브릭 감독은 슈트라우스의 이런 의도를 정확히 파악했던 것 같다. 애초 영화에 넣으려고 한 음악은 이 곡이 아니었다. 음악 감독 알렉스 노스가 만든 다른 음악을 쓸 계획이었다. 하지만 큐브릭 감독은 보다 파격적인 슈트라우스의 곡이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큐브릭 감독은 결국 ‘과감한 도전’을 선택했다.
장르를 불문하고 오랜 사랑을 받는 명작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예술가의 직관과 용기도 그중 하나다. 상당수 명작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논란과 각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돌파한 결과다. 타인의 까칠한 시선과 대중의 깐깐한 평가는 예술가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하지만 대중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만 급급한 작품 중에서 명작이 나올 리 없다. 예술가들이 각자 믿는 가치와 신념을 밀어붙일 때, 새 시대를 여는 예술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