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천뢰(天籟), 오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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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뢰(天籟)오수록

벼락처럼
모든 벽을 뚫고

난관을 모조리 무너뜨리고내 귀에 와 닿는다

[태헌의 한역]
天籟(천뢰)

如霹透壁墻(여벽투벽장)
盡破諸難關(진파제난관)
始到吾耳傍(시도오이방)[주석]
天籟(천뢰) : 하늘에서 나는 소리. 곧 바람소리, 천둥소리, 빗소리 따위.
如霹(여벽) : 벼락처럼. / 透壁墻(투벽장) : 벽과 담을 투과하다, 벽과 담을 뚫다. ‘墻’은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盡(진) : 모두, 다. / 破(파) : ~을 깨다, ~을 무너뜨리다. / 諸難關(제난관) : 여러 난관, 모든 난관.
始(시) : 비로소, 바야흐로.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到(도) : ~에 이르다, / 吾耳傍(오이방) : 나의 귓가.

[한역의 직역]
천뢰

벼락처럼 벽과 담을 뚫고
모든 난관 다 무너뜨리고
비로소 내 귓가에 닿는다[한역노트]
이 시를 오늘 처음으로 마주하였을 독자들 대부분은 제목에서 멈칫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역자가 작성한 주석을 미리 보지 않았다면, 한문이나 동양문화에 웬만큼 관심이 있고 어지간히 공부했다 하더라도 ‘籟’의 뜻을 바로 알아채지 못한 독자들 역시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시의 제목으로 쓰인 “천뢰”는 간단히 말해 ‘하늘에서 나는 소리’라는 뜻이다. 이 천뢰는 ‘지뢰(地籟)’, ‘인뢰(人籟)’와 함께 『장자(莊子)·제물론(齊物論)』 첫머리에 보이는 삼뢰(三籟) 가운데 하나이다.

장자에 의하면 ‘지뢰’는, 땅 위에 있는 모든 구멍들[사물들]이 바람에 부딪혀 만들어내는 각종의 소리이다. 간단히 말해 ‘땅에서 나는 소리’라는 뜻이므로 가랑잎이 굴러가는 소리나 서걱거리는 갈대 소리는 물론, 사람의 발자국 소리 같은 것도 ‘지뢰’라고 할 수 있겠다. 장자가 얘기한 ‘인뢰’는, 기본적으로 퉁소처럼 사람이 불어서 내는 소리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여기서 의미를 좀 더 확장시키면 여타의 악기 소리와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리’까지 모두 이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장자가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은 하늘에서 나는 소리인 ‘천뢰’는 대자연의 소리, 곧 바람소리, 천둥소리, 빗소리, 새소리 따위가 될 것이다.

이제 이 시의 제목이자 시 본문의 주어(主語)가 되는 “천뢰”의 함의가 무엇일까를 따져보기로 하자. 당연한 얘기지만, 이에 대한 탐색은 결국 이 시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관건(關鍵)이 되어줄 것이다. 시인이, 바람에 몹시도 일렁이는 나무의 사진을 보고 시상(詩想)을 일으킨 동기로 보자면-애초에 시인이 사진과 함께 이 시를 소개함- 이 시는 디카시로 간주할 수 있지만, 시상이 귀결되는 내용으로 보자면 이 시는 종교시나 철학시로 간주할 수 있을 듯하다.

역자는 이 시를 몇 번이고 반복해 읽으면서 무엇보다 먼저 천뢰가 뚫고 무너뜨린 ‘벽’과 ‘난관’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것들은 천뢰가 잘 전달되지 못하도록 하는 소음(騷音)의 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그 소음의 강에 너무 깊이 빠져 있다면, 혹은 내 주위가 그 소음의 강으로 겹겹이 둘러쳐진 형국(形局)이라면, 천뢰는 끝내 들을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소음의 강은 달리 유혹(誘惑)의 강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럴 경우에 “천뢰”가 와서 닿는 “내 귀”는, 내 머리 양쪽에 붙은 두 개의 귀가 아니라 바로 내 ‘영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에서의 “천뢰”는 곧, ‘내 영혼에 울림을 주는 소리’라고 정의할 수 있을 듯하다.

‘내 영혼에 울림을 주는 소리’는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복음(福音)일 수도 있겠고, 불교도들이 말하는 법어(法語)일 수도 있겠지만, 비종교인들에게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들려주는 가르침일 수도 있다. 그리고 또 개인에게는, 드디어 열린 누군가의 마음의 소리일 수도 있다. 가령 오랫동안 구애(求愛)하였던 누군가에게서 마침내 듣게 된 “예스(Yes)”라는 대답이야 말로 “천뢰”와 같은 마음의 소리가 아니겠는가!

이 시에서 핵심 비유어(比喩語)로 쓰인 “벼락”에 대해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극강(極强)의 힘으로 절연체인 공기를 뚫고 지상을 엄습하는 벼락은, 굉음(轟音)뿐만 아니라 섬광(閃光)과 전기(電氣)도 동반하는 실로 가공(可恐)할 자연 현상이다. 벼락을 맞은 존재물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순식간에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에, 벼락은 그 속성이 철저(徹底)하다고 할 수 있다. 벼락의 입장에서 보자면, 철저하기 때문에 뚫지 못할 것이 없고,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 없다. 시인이 천뢰를 “벼락처럼”으로 비유한 뜻은, 그 무시무시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철저함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 구절의 글귀나 한 마디의 말이 누군가에게는 “천뢰”가 될 수도 있음을 곰곰이 생각해보노라니, 한 구절의 글귀든 한 마디의 말이든 결코 함부로 내보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경각심(警覺心)이 불현듯 강물처럼 밀려온다. 한 편의 시 역시 누군가에게는 “천뢰”가 될 수 있을 터라 시인의 이 시가 그저 고맙기만 하다.

역자는 3연 4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오언(五言) 3구로 구성된 고시로 한역하고, 홀수 구마다 압운하였다. 그러므로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墻(장)’·‘傍(방)’이 된다.

2022. 7. 19.<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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