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의 호모파덴스] 신입 女직원 업무 몰입도가 가장 낮은 이유

수직적 문화에 여전히 남녀차별 존재
수천 대 1 뚫은 스펙이지만 업무 불만족
수평·유연한 조직에 우수 MZ인재 몰려

이찬 서울대 평생교육원장·산업인력개발학 교수
서울대 입학생을 대상으로 진로상담을 해 보면 뚜렷한 진로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중·고교 시절 일류대를 향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 끝에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지만, 거기엔 더 치열한 경쟁자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백 대 1의 경쟁을 뚫고 대기업에 취업한 신입사원들도 면접 때 본 패기는 온데간데없고, 입사 후에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급변하는 사례가 많다. 최근 국내 모대기업에서 직급별 업무 몰입도를 조사한 결과 남성은 과장급에서, 여성은 사원급에서 업무 몰입도가 가장 낮게 나와 해당 기업의 경영진이 충격에 휩싸인 적이 있다. 가장 활발히 즐겁게 업무를 배울 시기인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과장들은 말이 좋아 과장이지 명함에 영문으로 매니저(manager)라고 적혀 있을 뿐 실제로 관리할 후배는 없이 사원 대리 시절부터 해오던 업무에 추가로 과장 업무까지 떠맡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회의 시간에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언급하지 않을 때가 많다. 괜한 입방정을 떨었다가는, 그것 참 좋은 생각이라며 기안서를 작성해 오라고 업무를 떠맡은 경험에서 온 학습효과 때문이다. 침묵은 금이라고 가슴에 새기며 지내는 과장들이 늘어나는 이유다.

사원급 여성의 직무 몰입도가 가장 낮게 나온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치열한 입사 경쟁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신입 여성 직원의 경우 입사 초기에 맡은 직무 대비 과잉 스펙(over qualified)이 많다. 수많은 지원자 중 경쟁을 통해 선발하다 보니 회사 의도와는 상관없이 취업 선호도가 높은 기업에서는 기대 이상의 인재들이 선발되는 경우가 있다.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의 조직 문화는 수직적이고, 여전히 남녀 차별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청운의 꿈을 품고 입사한 뛰어난 여성 신입사원들이 입사 초기에 낙담하고 직무 열의를 잃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이런 업무를 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었던가’ ‘나는 앞으로도 우리 회사에서 월급 루팡 같은 상사가 시키는 이런 일들을 수년간 감내해야 하는가’ 등의 자괴감도 든다고 한다.기업 문화가 취업 선호도와 고용 브랜드에서 점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을 리더들은 기억해야 한다. 모기업의 신입사원 연수에서 주인 정신을 강조했던 임원이 “주인처럼 일하면 주인만큼 월급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신입사원의 질문을 받고 말문이 막혔다는 이야기도 있다. 앞으로 조직 문화를 개선하지 않는 기업은 우수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인재를 유치하기 어렵다.

필자의 서울대 연구팀이 국내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리직급이 조직에 불만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입사 4~5년차로 회사 업무도 알고 사내 인맥도 생기는 대리급에서 가장 불만이 높다니 왜 그럴까. 대리 정도 연차가 되면 신입 때 느꼈던 입사의 기쁨도 사라지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단계다.

업무 비중은 급증하는데 임금 인상률은 업무량에 턱없이 부족하다. 보상에 대한 불만과 함께 조직에 적응하면서 비로소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다양한 불편부당함이 이직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이어진다. 국내 채용 시장에서 대리급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대리급 직원들에 대한 각별한 배려와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이는 민간기업뿐만 아니라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민간기업의 직원들은 소속 조직에 대한 불만이 높아질 때 이직으로 실행되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공공기관의 직원들은 소속 조직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유체이탈된 상태로 재직하는 사례가 많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들은 구성원의 불만 요인을 해소하고 직무 몰입을 향상하기 위한 인사적 관리가 필요하다.

전통적 연공서열 의사결정 구조에서 벗어나야 창의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조직 문화를 꿈꿀 수 있다. 아무리 좋은 기획 아이디어나 디자인이 나와도 결재 과정에서 용두사미가 되는 경험이 누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업들은 지금 당장 유연한 조직 문화 설계에 소매를 걷어붙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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