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신냉전 시대, 기술은 중립적일 수 없다

중립적인 기술도
정치 개입땐 중립적일 수 없어

안보에 대한 고려없이
'산업으로만 기술' 존재 못해

정보수집·분석·정책 기획
유기적 조정과 통합 필요

최병일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던 그때, 나는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선전을 방문하고 있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맞서, 중국은 모방창신을 내걸고 최초 기술이 아니라 최초 상용화를 목표로 전력투구하고 있었다. 선전은 모방창신의 혁명기지다. 텐센트의 홍보관은 위챗이 전 세계에 얼마나 광범위한 사용자를 확보하는지 실시간으로 보여줬다. 홍보관 한쪽 벽에 설치된 대형 화면은 위성에서 바라본 지구를 보여주고 있었다. 중국과 한반도, 일본을 클로즈업한 위성 화면은 반짝거리는 초록빛으로 가득 찼다. 화면 위에는 9억8000만이란 숫자가 떠 있었다.

위챗은 중국산이지만, 전 세계적 플랫폼이기도 하다. 중국 유학생, 주재원, 기업인, 체육인, 예술인들은 위챗을 전 세계로 확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텐센트 홍보관 화면이 보여준 대로 대학 강의에서 그룹 과제를 주면 중국 학생들은 한국, 프랑스, 미국, 호주 학생들과 위챗으로 그룹 소통 창을 만든다. 자료 공유와 토론을 위해서다. 중국 학생과 연결된 그들이 위챗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아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이 설정한 금기된 단어들은 위챗에서 걸러지게 된다. 중국 학생들은 외국 학생들과의 토론에서 민감해지고, 방어적이다. 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대학 강의실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질까.기술은 그 자체로는 중립적이지만 기술이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순간, 대립적인 정치체제 간에 연결되는 기술은 더 이상 중립적이지 않다. 중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에서 태동한 기술을 허용하지 않지만 자유민주주의에서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기술 플랫폼의 원산지를 불문하고 모두 허용하는 순간,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존립과 안정에는 지극히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만들어진다. 인터넷이 태동하고,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디지털 혁명이 가속화될 때 개인의 창의성과 상상력이 국가의 압제를 무너뜨리라 했던 상상은 현실에서 오히려 그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이 민주주의 국가를 극도의 혼란으로 내모는 ‘악성 바이러스’로 작동하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주의 국가들은 관용, 인내, 다양성이란 이유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편평하게 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 이면에는 산업으로서의 디지털 기술이 가져다주는 이윤, 일자리, 기업 성장의 유혹이 달콤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전 화웨이 5세대(5G) 통신 논쟁을 생각해 보라. 5G는 디지털 혁명을 가능케 하는 기반 기술이다. 화웨이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 주요 서방 국가들이 화웨이 장비 구매 쪽으로 기울었다. 화웨이 장비를 구매할 경우 발생할 안보 위협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무시됐다. 코로나19에 대한 중국의 대처 방식을 보면서 서방세계는 화웨이를 포기했다. 올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세상은 빠르게 신냉전으로 들어가고 있다.트럼프 시대에 팔짱만 끼고 있던 유럽 국가들은 더 이상 관망하지 않는다.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서 군사적 중립을 유지해 왔던 핀란드, 스웨덴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전격 가입 신청을 했다. 대서양 국가들의 안보공동체이던 NATO는 그 영역을 인도·태평양까지 확산하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을 침공으로 규정하고 비난하지 않는 중국을 겨냥한 행보다.

신냉전 시대,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안보에 대한 고려 없이 산업으로만 기술이 존재할 수 없는 시대다. 안보 관련성이 높은 기술일수록 기술의 원산지가 중요해졌다. 그 판단을 제대로 하려면, 산업-안보를 연계하는 정보 수집, 분석 기능, 정책 기획과 집행 기능의 유기적·효과적인 조정과 통합이 긴요하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중국의 실리콘밸리 양쪽에 두 발을 딛고 성장해 온 디지털 강국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와 수호와 안정을 위한 새로운 구상은 여기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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