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상흔 고스란히 남은 경찰역사순례길 1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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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동·함안·내평전투 등 격전지…경찰 1만5천명 유엔군 활약 6·25 전쟁 중 한국경찰도 1만5천 명이 유엔군에 배속돼 활약했다. 군인들이 주로 산지 등에서 격전을 벌이는 동안 경찰들은 민가와 가까운 곳에서 '최후의 보루' 역할을 했다.
기록에 따르면 1만648명이 전사했고 6천980명이 다쳤다.
경찰청은 전국 곳곳에 구국경찰들의 혼을 느낄 수 있는 경찰역사순례길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고 29일 소개했다. 수도권과 가까운 강원에는 양양 경찰전적비, 춘천 내평전투 호국영웅 추모상, 영월 노전호국 경찰전적비가 있다.
특히 양양·속초 지역은 접경지로 수많은 격전이 있었다.
1992년 건립된 양양 전적비는 이 일대 25개 격전지에서 희생한 경찰들의 전공을 기념하고, 이곳 출신 경찰 32위의 넋을 추모하는 곳이다. 유엔군의 참전 전 조기에 전쟁을 끝내려던 북한군은 전쟁 발발 직후 춘천을 하루 안에 점령한다는 목표로 물밀듯이 남하했다.
춘천경찰서 내평지서장 노종해 경감 등 10여 명은 장렬히 전사하면서 북한군 3천여 명의 압도적 공세를 1시간 이상 저지했다.
덕분에 국군 6사단이 소양강 방어선을 구축할 시간을 벌어 춘천전투에서 승리했다. 이들의 희생은 춘천 내평전투 추모상에서 되새겨볼 수 있다.
전쟁 당시 영월발전소는 남한 전력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핵심시설이었다.
이 시설이 북한군에 점령당하자 김해수 경감과 석상익 경위는 결사대를 조직해 탈환 작전에 나섰다.
이들은 73명의 적을 사살하고 백병전을 벌였으나 모두 전사했다.
영월 녹전호국경찰전적비에서는 매년 7월 추모행사가 열린다. 충청권에는 영동 구국참전경찰유공자비와 논산 대둔산 경찰승전탑이 있다.
영동군도 충청·전라·경상도 3도 경계 지역으로 격전지였다.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가 막힌 북한군 패잔병들이 숨어들어 약탈을 일삼고 주민들을 위협하자 경찰들이 주민을 지켰다.
영동 유공자비는 당시 전사한 경찰관 33위와 의용경찰 99위를 기릴 수 있는 곳이다.
승전탑이 있는 대둔산 일대도 지리산과 함께 전쟁 후까지 공비들이 극성을 부리던 지역이다.
패잔병 2만여 명이 양민 학살과 관공서 습격을 자행했고, 이에 경찰은 전투경찰대를 설치해 공비 2천287명을 사살하고 1천25명을 생포했다.
호남권에서는 정읍 칠보충혼탑이 1954년 건립됐다.
영월화력발전소가 적의 수중에 넘어간 후 칠보발전소는 적에게 점거당하면 치명적인 요충지였다.
1951년 무장 공비들이 이곳을 포위하자 차일혁 경감은 전투경찰 75명을 이끌고 목숨을 걸고 교전을 벌였고, 발전소를 사수했다.
경무관으로 추서된 차 경감은 구례 화엄사를 지켜낸 인물로도 유명하다.
빨치산의 근거지가 될 수 있는 화엄사를 불태우라는 지시에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 년 이상의 세월로도 부족하다"며 사찰 문짝만 떼어내 불태우는 기지를 발휘했다.
화엄사는 2013년 차 경무관 공덕비를 건립했다.
곡성 경찰충혼탑은 퇴각 명령에 불응, 520명의 전투대를 조직해 북한군 기갑연대 52명을 사살하고 3명을 생포한 한정일 곡성서장 등을 기리기 위해 건립됐다.
패전을 거듭하던 전쟁 초기 대표적 승전이었다. 영남권에서는 6·25 전쟁 관련 경찰사에서 주요 전투로 꼽히는 칠곡 다부동 전투와 함안 전투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다.
최후 방어선이었던 낙동강 전선 중에서도 다부동은 전략적 요충지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당시 조병옥 내무부 장관은 "대구를 내주는 건 나라를 내주는 것"이라며 결사항전했다.
다부동 충혼비에서 이러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함안에서도 경찰관들이 수많은 전투를 치러내며 북한군 4개 사단을 격퇴했다.
미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라며 대한민국 경찰의 전투력과 전공을 극찬하기도 했다.
이를 기리는 승전탑이 2011년 대산면에 건립됐다. 강용진 경찰청 경찰역사기록TF팀장은 "경찰역사순례길 체험을 통해 자유민주사회를 지켜온 대한민국 경찰의 희생과 역할도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기록에 따르면 1만648명이 전사했고 6천980명이 다쳤다.
경찰청은 전국 곳곳에 구국경찰들의 혼을 느낄 수 있는 경찰역사순례길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고 29일 소개했다. 수도권과 가까운 강원에는 양양 경찰전적비, 춘천 내평전투 호국영웅 추모상, 영월 노전호국 경찰전적비가 있다.
특히 양양·속초 지역은 접경지로 수많은 격전이 있었다.
1992년 건립된 양양 전적비는 이 일대 25개 격전지에서 희생한 경찰들의 전공을 기념하고, 이곳 출신 경찰 32위의 넋을 추모하는 곳이다. 유엔군의 참전 전 조기에 전쟁을 끝내려던 북한군은 전쟁 발발 직후 춘천을 하루 안에 점령한다는 목표로 물밀듯이 남하했다.
춘천경찰서 내평지서장 노종해 경감 등 10여 명은 장렬히 전사하면서 북한군 3천여 명의 압도적 공세를 1시간 이상 저지했다.
덕분에 국군 6사단이 소양강 방어선을 구축할 시간을 벌어 춘천전투에서 승리했다. 이들의 희생은 춘천 내평전투 추모상에서 되새겨볼 수 있다.
전쟁 당시 영월발전소는 남한 전력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핵심시설이었다.
이 시설이 북한군에 점령당하자 김해수 경감과 석상익 경위는 결사대를 조직해 탈환 작전에 나섰다.
이들은 73명의 적을 사살하고 백병전을 벌였으나 모두 전사했다.
영월 녹전호국경찰전적비에서는 매년 7월 추모행사가 열린다. 충청권에는 영동 구국참전경찰유공자비와 논산 대둔산 경찰승전탑이 있다.
영동군도 충청·전라·경상도 3도 경계 지역으로 격전지였다.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가 막힌 북한군 패잔병들이 숨어들어 약탈을 일삼고 주민들을 위협하자 경찰들이 주민을 지켰다.
영동 유공자비는 당시 전사한 경찰관 33위와 의용경찰 99위를 기릴 수 있는 곳이다.
승전탑이 있는 대둔산 일대도 지리산과 함께 전쟁 후까지 공비들이 극성을 부리던 지역이다.
패잔병 2만여 명이 양민 학살과 관공서 습격을 자행했고, 이에 경찰은 전투경찰대를 설치해 공비 2천287명을 사살하고 1천25명을 생포했다.
호남권에서는 정읍 칠보충혼탑이 1954년 건립됐다.
영월화력발전소가 적의 수중에 넘어간 후 칠보발전소는 적에게 점거당하면 치명적인 요충지였다.
1951년 무장 공비들이 이곳을 포위하자 차일혁 경감은 전투경찰 75명을 이끌고 목숨을 걸고 교전을 벌였고, 발전소를 사수했다.
경무관으로 추서된 차 경감은 구례 화엄사를 지켜낸 인물로도 유명하다.
빨치산의 근거지가 될 수 있는 화엄사를 불태우라는 지시에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 년 이상의 세월로도 부족하다"며 사찰 문짝만 떼어내 불태우는 기지를 발휘했다.
화엄사는 2013년 차 경무관 공덕비를 건립했다.
곡성 경찰충혼탑은 퇴각 명령에 불응, 520명의 전투대를 조직해 북한군 기갑연대 52명을 사살하고 3명을 생포한 한정일 곡성서장 등을 기리기 위해 건립됐다.
패전을 거듭하던 전쟁 초기 대표적 승전이었다. 영남권에서는 6·25 전쟁 관련 경찰사에서 주요 전투로 꼽히는 칠곡 다부동 전투와 함안 전투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다.
최후 방어선이었던 낙동강 전선 중에서도 다부동은 전략적 요충지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당시 조병옥 내무부 장관은 "대구를 내주는 건 나라를 내주는 것"이라며 결사항전했다.
다부동 충혼비에서 이러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함안에서도 경찰관들이 수많은 전투를 치러내며 북한군 4개 사단을 격퇴했다.
미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라며 대한민국 경찰의 전투력과 전공을 극찬하기도 했다.
이를 기리는 승전탑이 2011년 대산면에 건립됐다. 강용진 경찰청 경찰역사기록TF팀장은 "경찰역사순례길 체험을 통해 자유민주사회를 지켜온 대한민국 경찰의 희생과 역할도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