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주고받는 방식' 달라지는 한미동맹

尹 외교 중심축 한미동맹 강화
美·中 줄타기하는 '전략적 모호성'
탈피하고 '전략적 명료성' 추구

미국에만 의존하는 동맹은 끝나
일자리, 글로벌 공급망, R&D 등
동맹국의 이익에도 기여해야

최병일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의 고비를 숨 가쁘게 내달려온 대한민국. 지금까지 한국을 이끌어 온 세대는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가 한국의 미래 발전 경로라고 교육받았고, 믿게 됐고, 그 믿음을 실천에 옮겨왔다. 한국은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해 있다. 디지털 전환, 기후변화, 에너지 위기, 강대국 정치의 귀환 등 한국이 서 있는 단층선은 더 위태로워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명민하고 효과적인 외교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 외교의 핵심 키워드는 ‘동맹’이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려는 의지는 이미 그간의 말과 행동으로 보였다. 대선 후보 시절 토론에서의 윤석열의 말과 외국 언론에의 기고, 대선 승리 후 인수위원회의 행보, 새로운 정부 외교 진용 지휘부의 인선이 그렇다. 지난 10년간 미국과 중국의 대립 속에서 안보도 챙기고 경제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속내를 에둘러 표현했던 ‘전략적 모호성’의 시대는 사라질 전망이다. 대신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을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21세기 초반이 당면한 디지털 전환, 기후변화, 에너지 위기 등 메가트렌드로 범위를 확대하는 ‘전략적 명료성’의 담대한 시대로 전환시킬 구상이다.일각에서는 한국 외교의 중심을 한·미 동맹 근간으로 이동하는 것에 우려를 제기한다. 그들은 미국의 국내 정치에서 그런 우려를 찾아낸다. 2년 후 미국 대선에서 만약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등장해 권력을 잡는다면, 과연 미국은 동맹 외교를 계속할 것인가. 그들은 반문한다. 트럼프 집권 4년 동안 세계가 경험했던 미국은 분명 동맹외교는 아니었다. 미국의 힘만 믿고 동맹, 비동맹 가릴 것 없이 거칠게 몰아붙이던 그였다. 트럼프는 독재자 푸틴, 시진핑, 김정은을 친구라 불렀고,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 일본, 독일은 미국에 무역수지 적자를 안겨주는 나쁜 나라였다. 그는 철강수입을 외국에 의존하는 것은 미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만든다고 하면서 철강수입에 25% 관세를 전격적으로 부과했다.

2년 후 트럼프가 다시 집권하면 미국은 다시 일방주의로 회귀할 것이기에, 한·미 동맹 중심으로 한국 외교의 근간을 이동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은 논리 구조가 불완전하다. 트럼프가 일방주의적 외교를 선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트럼프 집권 후반으로 가면서 트럼프는 동맹국과의 연계를 중시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인도·태평양 전략이 대표적인 예다. 트럼프가 다시 등장해 권력을 잡는다 해도, 트럼프 2기는 1기 때 경험한 미국 일방주의의 한계에 대한 학습효과가 있을 것이다. 향후 미국 국내 정치의 어떤 시나리오도 미국의 동맹 중시 외교 노선의 급격한 중단이나 후퇴를 예상하기는 무리라는 추론이 자연스럽다.

문제의 핵심은 과거 미국 주도 동맹을 미국이 주도했다면 지금 미국과의 동맹에 대한 성공 여부의 절반은 미국 동맹국의 몫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이전까지 미국이 동맹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압도적인 경제력과 미국 내 파워엘리트의 미국의 역할에 대한 초당적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선거 때마다 일자리 우선 국내 정치가 압도했지만, 선거 후엔 초당적 동맹 중시 외교가 미국을 이끌었다. 미국의 경제력은 여전히 강력하나 과거처럼 압도적이지 않다. 초당적 동맹 중시 외교를 지속할지는 동맹국이 동맹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에 따라 판가름 나는 시대로 옮겨왔다.

미·중 패권경쟁, 지정학의 귀환, 예측불허 팬데믹 시대에 그 기여의 잣대는 무엇일까. 동맹국에 얼마나 일자리를 만들지, 무역과 투자를 어떻게 디자인해 글로벌 공급망의 통제권을 동맹국의 통제권 안에 둘 것인지, 핵심 연구개발체계는 이런 맥락에서 어떻게 공조할 수 있을 것인지, 디지털 플랫폼의 자유로운 유통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려면 어떤 공조가 필요한지 등등. 미국 혼자 주도할 수 없는 것들이다. 대한민국이 민간과 정부의 역량을 화학적으로 결합시켜야만 감당할 수 있는 숙제다. 경제 안보는 윤석열 정부가 내건 구호이기도 하지만, 미국에도 절실한 실천명제이다. 전략적 모호성의 시대에서 동맹 시대로의 전환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고 성공하려면, 상대국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행동과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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