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탄소중립 과속' 후폭풍…정부만 생색, 기업은 덤터기

‘탄소중립 과속’ 후유증이 본격화할 조짐이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탄소)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도록 한 ‘탄소중립기본법’이 지난달 시행되면서 철강 자동차 전자 등 주력 제조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는 한경 보도(본지 4월 5일자 A1·3면 참조)다. 기업들은 탄소배출권을 더 많이 구입하든지, 공장을 멈추든지 선택해야 할 판이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 급가속 페달을 밟은 탄소중립 정책의 부작용은 이미 예상돼 왔다. 대통령 소속 2050탄소중립위원회는 지난해 10월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기존 26.3%에서 40%로 크게 높였다. 2030년까지 매년 온실가스를 4.17% 줄여야 한다. 유럽연합(EU·1.98%), 미국(2.81%), 일본(3.56%)보다 연평균 감축률이 높다.탈(脫)원전을 고집한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비중 확대(70%)를 통한 탄소 제로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다행히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이를 폐기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술 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산업계와 기업들에는 반가운 소식이다. 원자력 발전 비중을 높이면 탄소 감축이 한결 수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탄소 감축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확보나 신기술 개발은 꿈과 같은 얘기다. 한국의 풍력 기술 수준(2020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평가)은 75(최고 100)로 EU(100) 미국(90)은 물론 중국(80)에도 못 미친다. 바이오·폐자원 에너지화 기술도 주요국에 뒤진다. 탄소 감축 기술도 2030년까지는 상용화가 힘들다. 지난해 국내 민간 기업 중 가장 많이 탄소를 배출한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기술 개발 시기를 2040년으로 보고 있다. 기술이 있더라도 고로 1기를 전환하는 데만 약 5조9000억원이 들어간다.

문 대통령은 작년 11월 영국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2050 탄소중립 계획’을 선언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임기가 반년밖에 안 남은 정부가 ‘탄소중립 대못박기’를 한 것이다. 재임 기간의 업적 중 하나로 내세울 모양이다. 온실가스 배출량 1·3·4위인 중국 인도 러시아가 자국 제조업 보호를 위해 탄소 제로 달성 시기 합의를 거부한 것과 대조된다. 한국처럼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무리한 탄소중립 정책은 산업과 기업에 치명적이다. 탄소 감축이 가야 할 길이지만, 이렇게까지 과속할 일은 아니다. 억지로 탄소 감축량을 맞추라고 하면 기업들은 설비와 생산, 고용을 줄여야 한다. 그래도 안 된다면 공장 문을 닫거나 해외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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