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들 한숨, 로펌·전관은 호황…과잉 규제의 역설

국내 대형 로펌들의 지난해 매출 실적이 공개됐다. 한경이 취합 집계한 10대 로펌 매출 통계를 보면 2020년보다 10% 성장해 총 3조원에 육박한다. 기업 자문 시장을 필두로 한 대형 로펌들의 성장세가 눈길을 끈다. 부동의 1위인 김앤장의 독주, 광장과 태평양의 2·3위 각축전, 4·5위를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율촌과 세종의 경쟁도 지켜볼 만하다.

로펌 일감이 급증한 것은 코로나 와중에도 기업 신사업 진출, 부단한 인수합병(M&A), 적극적인 ESG 경영 등의 요인이 크다. 대내외 여건이 어렵지만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는 기업의 투자는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처럼 계속됐던 것이다. 대형 로펌들은 불어난 덩치에 걸맞게 대형화·전문화·국제화로 법률서비스 수준을 확 끌어올리며 비좁은 국내 시장의 ‘골목대장’에서 벗어나는 데 앞장설 때다.기업 활동에 기댄 로펌업계의 견조한 성장세를 보면서 한편으론 씁쓸한 뒷맛이 느껴진다. 로펌시장이 신산업 진출, M&A 등에 수반되는 전통적 법률자문만으로 커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로펌과 기업 사정을 종합해보면, 지난해에는 중대재해처벌법과 개정 공정거래법에 대비하려는 수요가 로펌에 ‘특수’를 안겼다. 통상적 ‘법률 리스크’ 차원을 넘어선 ‘규제 리스크’ 공포에 기업들이 값비싼 비용을 치러가며 로펌을 찾았다는 얘기다. 숱한 논란 속에도 지난주 시행에 들어간 중대재해처벌법을 보면, 몸값이 비싼 변호사와 힘 있는 정부기관 출신 전관(前官)이 포진한 로펌과 자문계약을 맺어도 뾰족한 수는 없다. 그래도 기업자문이 이렇게 급증한 것을 보면 비용이 문제가 아니다.

고질적 규제 입법과 갑질 행정으로 기업 한숨이 커질수록 로펌은 호황을 누린다면 정상이 아니다. ‘전천후 규제부처’ 공정거래위원회가 해묵은 대기업 규제를 장악한 채 플랫폼 규제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웬만한 로펌에는 공정위 출신이 없는 곳이 없을 지경이 된 지 오래다. 정부 외곽 금융감독원 같은 곳도 고위직 출신이면 로펌과 회계법인의 치열한 모시기 경쟁 대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발효되면서 고용노동부 출신 몸값이 치솟는 것을 보면 한국형 규제 생태계의 일단을 볼 수 있다.

강력한 기업 규제가 로펌 호황으로 이어지고, 전관 몸값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런 ‘과잉 규제의 역설’을 혁파하지 않으면 경제성장도 일자리도 기대하기 어렵다. 신산업 태동도 어려울 것이며, 기업들은 해외로 나갈 궁리나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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