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反기업 단체'에 경영간섭 길 터준 국민연금, 이대론 안 된다

국민연금이 투자 기업들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권 강화를 예고해 파장이 거세다. 국민연금은 내달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소송권을 현재 금융전문가 중심의 기금운용본부에서 노조·시민단체가 주도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로 넘긴다는 방침이다. 수탁위는 소송권 이양을 전제로 이미 20여 개 주요 기업에 서한을 발송했다. 이는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에 이어 반(反)기업 성향 단체들에 기업경영 간섭의 길을 터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국상장사협의회 등 7개 경제단체들이 일제히 반대하고 나선 것도 무리가 아니다.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소송을 통한 국민연금의 경영 개입이 적절한지 여부와 수탁위 구성의 적합성, 그리고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편 문제다. 우선 국민연금이 굳이 헤지펀드처럼 기업에 소송까지 걸어가며 경영에 간섭할 필요가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국민연금은 현재 917조원의 적립기금 중 17.9%를 국내 상장사에 투자하고 있다.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기업이 272개에 달한다. 연금은 이들 기업에 2018년 마련된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 의결권 행사지침)에 따라 여러 통로를 통해 개입해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송까지 남발할 경우 투자 기업 가치는 훼손되고 그 소송비용 부담도 국민연금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일본 공적연금펀드(GPIF),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 등 세계 유수 연기금들은 소송보다는 물밑 협상을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기업들을 유도하는 실리적 정책을 쓰고 있다.설사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지금처럼 수탁위에 그런 일을 맡길지도 재고해야 한다. 수탁위는 참여연대 민주노총 등 기업에 적대적인 단체 출신들이 주도하는 구조다. 이들 단체의 지침에 따라 기업을 상대로 막강한 실력행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반기업-친노조 정책으로 일자리를 내쫓고 민간 활력을 떨어뜨린 게 지난 5년이다. 이런 단체들이 연금의 등에 올라 타 소송권까지 거머쥐고 ‘기업 저승사자’ 행세를 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겠나.

다행히 대선 후보들 사이에서 논의를 선거 뒤로 미루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당연하고 옳은 의견이다. 더구나 2055년이면 기금이 고갈돼 1990년 이후 출생한 가입자들은 한 푼도 못 받는다는 전망까지 나와 있다. 차기 정부는 수탁위를 포함한 전체 지배구조의 독립성과 연금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방향에 맞춰 국민연금 개혁 논의를 새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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