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제안보 200개 품목 지정, 전시행정 그쳐선 안 된다

어제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외교·안보적 관점의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대응이 매우 긴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공급망 리스크 관리를 위해 국내 생산설비 구축, 전략적 비축 확대, 수입처·공급망 다변화, 대체재·대체기술 개발 등이 중요하다”고 했다. 정확한 상황인식이어서 더 보탤 말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잘 알고, 답이 뻔한데 그동안 정부는 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평론하듯 사후평가는 잘 하지만, 정작 이를 교훈 삼아 새로운 문제에 대처할 능력이 부족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부처 간 칸막이 행정과 책임회피 관행, 컨트롤타워 부재, 임시·대증요법 치중 등이 원인일 것이다. 이런 문제가 개선되지 못하니 10년 전 중국 희토류 사태, 2년 반 전 일본 반도체소재 수출규제를 겪고도 달라진 게 없다. 최근 요소수 대란으로 물류가 멈출 뻔한 대형위기가 보여준 대로다.어제 회의에서 확정한 ‘경제안보 핵심품목 200개’ 지정도 기대는커녕 우려가 앞선다. 특정국 의존도가 50% 이상이거나 모니터링 필요성이 큰 4000여 품목을 대상으로 조기경보시스템(EWS)을 가동하는 것이야 당연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중 200개 품목이 ‘핵심’이라고 대대적으로 공표할 일인지 의문이다. 심지어 선정기준이 국내 경제 영향, 대외의존도, 단기적 시급성, 국내 생산·수입대체 가능성 등이라고 상세히 밝혔다. 이쯤되면 호시탐탐 자원무기화를 노리는 나라들에 한국의 허점을 고스란히 알려준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 일본 등 경제안보 대응 모범국들은 이보다는 대체재 개발을 장기 연구개발 과제로 삼는 식의 상시 대응에 중점을 둔다. 일본만 해도 희토류 문제에 대비해 수십 년치 물량을 확보했을 정도다. 이제서야 이런 대책을 따라하겠다는 한국이 핵심 품목 리스트를 다 보여주면서 무슨 전략을 짤 수 있겠나. 대책회의 한다고 부산을 떨면서 가뜩이나 공급망 걱정이 태산인 기업들만 힘들게 할 소지가 다분하다.

언제 어디서 공급망의 약한 고리가 끊어질 지 모르는 판에 위험품목이 200개뿐이겠는가. 모든 품목이 경제안보 면에서 중요하다는 각오로 수급 안정에 빈틈이 없는지 전략적이고 내밀하게 들여다봐야 할 때다. 국민을 상대로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에 신경 쓰는 것이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낫다.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