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찰까지 숟가락 얹는 중대재해 수사, 기업에 중대한 재해다

경찰이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수사권을 갖겠다고 나서 기업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는 한경 보도(9월 8일자 A1, 8면 참조)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과잉처벌과 모호한 근거조항 등으로 기업들로부터 벌써부터 ‘악몽’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여기에다 수사권을 놓고 자칫 고용노동부와 경찰 간에 밥그릇 싸움까지 벌어질 양상이다. 이러니 기업인들로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중대 재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경찰이 수사권을 주장하는 명분은 검·경 수사권 조정이다. 현재 노동 관련 수사는 고용부 근로감독관이 검찰 지휘를 받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중대재해 사건의 경우 경찰과 고용부가 공동 수사하되, 중복되면 양해각서(MOU)를 맺어 수사권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 담당사건이 부패·경제 등 6대 범죄로 줄었기 때문에 노동 관련 수사는 경찰 몫이라는 논리다. 경찰의 느닷없는 ‘숟가락 얹기’에 정치권까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경찰이 전문성이 떨어지는 노동문제 수사까지 맡겠다고 나선 속내는 대강 짐작할 만하다. 말로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당연한 의무라고 하지만, 수사권이 조직에 득(得)이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중대재해처벌법의 골자는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대재해의 유형과 경영책임자의 범위 등에 관한 규정이 모호하고 불분명해 곳곳에 자의적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부처 입장에선 조직을 키우고, 퇴임 후 안전판을 마련하기에 ‘안성마춤’인 셈이다. 고용부에서 이미 전·현직 관료들의 몸값이 치솟고, 관련 부서 인력이 늘어나고 있는 점도 확인했을 터다.

하지만 경찰이 지금 그런 주장을 펼 처지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경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맡은 법무부 차관 폭행사건을 정권 눈치 보느라 내사 종결 처리해 지탄을 받았다. 최근 전자발찌 성범죄자 사건도 초동수사에 실패해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다. 꼭 해야 할 일은 소홀히 하면서도 부동산담화 때는 경찰청장이 난데없이 나타나 국민들을 잠재적 투기꾼으로 취급하는 듯한 부적절한 상황을 연출했다. 경찰은 새로운 업무를 맡겠다고 나서기보다 맡은 일부터 제대로 하는 게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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