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한복판서 시동 꺼져" BMW 차주들 '불안'

고압펌프 쇳가루 영향…"2차사고 인명피해도 우려"
BMW코리아 "저품질 연료 추정…제조사, 리콜 결정 못해"
서울 강남구에 사는 오모(27)씨는 지난 12일 용인-서울고속도로를 주행하다가 BMW X6 차량의 시동이 갑자기 꺼지는 사고를 당했다. 차가 멈춘 지점이 터널 주변이라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제조사에 이를 알리자 "고압 펌프에서 나온 쇳가루로 엔진에 영향이 가서 차가 멈춘 것으로 판단된다"며 펌프 부분을 수리하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오씨는 19일 "2019년 9월 차를 구입한 이후 같은 사고만 벌써 두 번째"라며 "10개월 전에도 같은 문제로 수리를 했는데 생명의 위협을 느껴 더는 차를 탈 수 없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BMW 디젤 차량의 일부 기종이 고속주행 중 급작스럽게 시동이 꺼지며 멈추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인명피해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지만, 소비자들은 제조사가 책임 있는 조치를 하지 않는다며 불안해한다.

2020년형 BMW X5 차주인 임모(54)씨 역시 최근 시속 100㎞로 고속도로를 주행하다 길 한복판에서 시동이 꺼지는 일을 겪었다. 이 역시 연료 계통에 쇳가루가 쌓여 발생한 문제로 파악됐다.

임씨는 "사고 한 달 전에도 서비스센터를 방문해 점검받은 터라 너무 놀랐다"며 "목숨이 달린 일인데 센터 직원은 무상수리 외에 해줄 게 없다고 하고 제조사도 책임을 떠넘기고만 있다"고 했다.

온라인에도 유사 사례가 줄을 잇는다. 한 누리꾼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2시간 동안 차들이 쌩쌩 달리는 길 위에서 불안해하던 아내와 딸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며 "수리가 끝나도 다시 차를 타고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2차 사고에 따른 인명피해가 염려된다며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글을 올린 차주도 많았다.

이 문제는 '리콜'(시정조치) 없이 무상수리 권고에만 그치고 있다.

제조사 측이 "쇳가루 문제는 제조사와 무관하게 디젤 차량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연료 품질과 필터 관리가 중요하다"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원인이 무엇이든 운행 중 '시동 꺼짐' 현상은 명백한 리콜 대상이라며 정부가 소비자 중심으로 적극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고압 펌프는 초고압으로 연료를 분사해 출력을 높이는 신기술이다 보니 연료의 청정도가 중요하고, 쇳가루가 들어가면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애초에 쇳가루가 안 들어가게 제작해야지 '시동이 꺼질 수도 있다'는 식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토교통부도 자동차 리콜 여부를 심사하는 제작결함심사평가위원회를 소비자 관점에서 소집해야 하는데 큰 인명사고가 여러 번 나야 움직이기 시작한다"며 "늘 적당한 선에서 늑장 대처하는 것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일"이라고 했다.

BMW코리아 관계자는 "시동 꺼짐 현상과 관련해서는 지난해부터 국토부가 조사하고 있다"며 "제조사가 리콜 조치를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가능한 한 불편이 덜하도록 최대한의 조치를 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쇳가루 문제는 국내 유통되는 '가짜 경유' 등 저품질 연료와 연관된 것으로 현재까지는 추정된다"며 "해외에서 판매된 같은 기종에서는 이런 문제가 보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