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가 있긴 하냐고 전해라~

뉴스 속 세상은 한 시도 바람 잘 날이 없다. 감동은 드문 반면, 짜증 유발 뉴스들은 넘쳐나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불구, 오늘도 버릇처럼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서 뉴스 헤드라인을 밀어 올리다가 아수라장 정치권 뉴스에 밀려 화면 하단부에 살짝 올라앉은 한 줄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과테말라 50대 한인 숨진채 발견돼, 20년간 봉제공장 운영’이란 제목이다.
봉제산업 관련 매체에 종사하다 보니 뉴스 헤드라인에 ‘봉제’란 단어만 올라와도 급관심이 발동한다. ‘가재는 게편’이라서이다. 헤드라인을 터치해 내용을 살폈다.
“과테말라 수도 과테말라시티 외곽에서 20년째 봉제공장을 운영해온 박모(55)씨가 지난 12월 15일 공장 인근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숨져 있는 것을 현지인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박씨 얼굴에 복면이 씌워져 있었고 둔기 등에 심하게 구타를 당해 얼굴이 엉망이었다. 현지 경찰은 박씨가 괴한들에게 납치된 뒤 피살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펼치고 있다.”
또 ‘과테말라’다. 그리고 피해자는 또 한인 봉제인이다. 과테말라에서 한인 봉제인을 타깃으로 납치,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수차례 있어 왔다.
현지 한인 사회에서는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땀흘려 일하다가 납치되고, 무참히 살해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관심도 대책도 없어 보인다”며 “자국민 보호는 대사관의 주 역할 중 하나인데 대책 마련을 위한 외교채널을 가동이나 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필자가 과테말라시티에서 봉제 관련업에 종사하던 김*석씨를 처음 만난 것은 19년 전인 1996년 12월이었다. 그는 과테말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봉제공장인 ‘KORAM S.A’가 1984년에 셋업될 때 공장설비를 도맡은 장본인이었다.
그렇게 과테말라와 연을 맺은 그는 1988년 ‘KIMS S.A’라는 니트봉제공장을 현지에 설립 운영하면서 아예 눌러 앉았다. 이후 우리나라 봉제공장들이 중미 진출 러시를 이루는데서 착안, 한인들의 현지적응을 돕기 위해 한국으로부터 생필품을 들여와 공급하는 슈퍼마켓을 차려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96년 3월경 김씨를 내조하며 슈퍼마켓을 돌보던 부인이 매장 안에서 현지인에게 사살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발생 9개월이 지난 어느날, 필자는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그를 현지에서 만나 당시 사건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단순 강도 사건이 아니었다. 아내는 이 일이 있기 얼마 전 이미 또다른 사건의 증인으로 나섰다. 이를 눈치챈 범인들이 우리 슈퍼마켓 경비원을 사주해 증인을 없애버리도록 한 사건이다.”
봉제산업 월간지에 소개된 김영섭씨(1997년 1월)
그로부터 또 6년이 흐른 2002년 어느날, 안타깝게도 김*석씨 마저 괴한들의 총에 맞아 숨졌다는 소식을 그의 동생, 김영섭씨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역시 1989년에 과테말라로 들어와 재봉기 및 부품공급업을 해오고 있었다.
그는 형수가 1996년 피살된데 이어 형마저 2002년에 괴한들의 총에 숨지자, 교민들이 납치되거나 살해당하면 몸을 사리지 않고 적극 개입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느라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겼다고 했다.
김영섭씨는 지난 2002년 가족들과 함께 과테말라로 건너와 봉제공장 생산라인 전기설비를 하던 국○○씨가 2004년 1월말 납치, 일주일 만에 살해돼 매장된 것을 밝혀냈다. 이 역시 김영섭씨가 전면에 나서 도왔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재산을 수사비로 다 쓰고 빈 손으로 귀국한 국씨 유기족은 “그냥 대사관에  알리지 않고 말(협상) 잘 하는 분 찾아 해결했더라면 더 나았을지도 몰라요”라며 정부의 뜨뜻미지근한 대응에 서운함을 표하기도 했다.

 
과테말라 봉제현장(1997년 현장취재 사진)과테말라는 중미지역에서 가장 섬유봉제산업이 발달한 나라이다. 미국으로 의류를 수출하기 위한 봉제공장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 원부자재 그리고 봉제 관련 설비와 부품의 수요가 특히 많다.
지난 몇 년간 지속되어온 최저임금 인상과 섬유봉제업체에 무관세 혜택을 주었던 마낄라 법이 기간 만료를 앞두고 있어 섬유산업이 약간 침체된 분위기이나 현재 논의되는 마낄라 법 대체 법안이 승인될 경우 미국 수출을 위한 지역적 위치, 무관세 협정 등으로 인해 섬유봉제산업이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보여 현지에 진출해 있는 한국 봉제공장들의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다.
특히 미국 시장의 의류 트렌드가 빠르게 바뀜에 따라 새로운 기술의 생산설비, 신소재에 대한 현지 봉제업체들의 수요가 늘고 있어 품질이 우수한 한국산 봉제설비나 신소재의 수출 증가도 기대되는 지역이다.

이처럼 현지 봉제환경이 좀 나아지려는데 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되풀이 된 것이다.
이젠 정부가 나서야 한다. 외교채널을 풀가동해서라도 과테말라 정부를 푸쉬해 특단의 대책 마련을 요구해야 한다. 타국에서 자국민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응당 보호막이 되어줘야 하고 보살펴야 하는 것이 나라의 책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