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 50조 만들고 떠나는 서정진…코로나 치료제 마지막 승부 [이슈+]

31일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내년 3월 주총까지 회장직 유지

사기꾼 비판에 공매도 공세까지
바이오베터·코로나 치료제 집중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뉴스1
"저는 올해 말 셀트리온그룹을 떠나 19년 전과 같이 새로운 벤처기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만 65세가 되는 내년 초 스타트업을 설립해 벤처기업인으로 돌아간다. 2002년 셀트리온을 창업한 서 회장은 '가능성 없는 소리만 하는 사기꾼'이란 평가도 받았지만 뚝심 하나로 현재의 셀트리온그룹을 일궜다.서 회장은 2013년 "공매도 세력과의 싸움에 질렸다"며 경영권 매각을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체 개발한 세계 최초 항체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의약품)가 성공하면서 현재의 셀트리온을 만들었다. 서 회장은 오는 31일 일선에서 물러난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항체치료제 개발이 진행중인 만큼 내년 3월 주주총회까지 공식 회장으로 역할을 담당한다는 계획이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셀트리온 주식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올해 3월 13만원대까지 떨어졌던 셀트리온 주가는 지난 7일 40만3500원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99% 넘게 폭등했고 시가총액은 50조원을 앞두고 있다. 셀트리온 제품의 해외판매를 맡고 있는 셀트리온헬스케어, 국내 판매를 담당하는 셀트리온제약까지 합치면 시가총액만 80조원이 넘는다.

코로나19 치료제의 조건부 허가 신청 소식이 투자심리를 자극했다. 셀트리온이 임상 중인 항체치료제는 단가가 높고 개발 중인 업체도 적어 수출에 대한 기대가 높다는 분석이다.

"비싼 의약품 특허 풀리면 복제약 만들어 팔자"

충북 청주 출신인 서 회장은 바이오 전공자도, 제약회사 출신도 아니다. 1983년 건국대 산업공학과 졸업한 그해 삼성전기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85년 한국생산성본부로 이직해 기업 컨설팅을 맡았다. 서 회장을 알아본 건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다. 김 회장은 서 회장을 발탁해 1992년 대우자동차로 데려왔다. 서 회장은 30대 중반에 최연소 대우자동차 임원이 됐다.

하지만 1997년 IMF사태로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서 회장도 1999년 실업자 신세가 됐다. 당시 나이는 42세. 40대 실업자를 받아주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서 회장이 대우차 동료 6명과 벤처기업 넥솔을 만든 이유다. 그는 경영 컨설팅부터 식품 수입, 장례업까지 돈이 되는 사업은 모두 했다. 하지만 하나 같이 실패했다. 열정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시점이다.

그러다 발견한 게 바이오시밀러다. 서 회장은 비싼 의약품의 특허가 풀리면 효능과 안전성은 같은 복제약을 만들어 저렴하게 팔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누구도 생각하지 않은 사업에서 가능성을 찾은 것이다.
셀트리온 소속 연구원들이 인천 송도에 있는 연구실에서 신약 개발을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
2000년 서 회장은 넥솔바이오텍을 창업해 미국 바이오기업 제넨텍을 찾아갔다. 당시 제넨텍은 유방암 치료용 바이오의약품 '허셉틴'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서 회장은 15년 남은 특허 만료를 앞두고 기술 이전을 제안했지만 문전박대 당했다. 하지만 서 회장의 계속된 노력에 제넨텍의 계열사인 벡스젠이 그를 눈여겨봤다. 이후 서 회장은 2001년 벡스젠이 개발하던 에이즈 백신 기술을 이전받아 2002년 셀트리온을 설립했다.

부도 위기에 '위탁생산'으로 반격

서 회장은 이듬해인 2003년 투자금을 모아 인천 송도에 5만리터 생산 규모의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완공을 1년 앞둔 2004년 벡스젠의 에이즈 백신의 임상 3상이 실패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사실상 부도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럼에도 서 회장은 멈추지 않았다. 사채까지 써가며 공장 완공에 집중했다. 당시 시장에서는 서 회장을 '사기꾼'이라 비판했다. 만들기로 한 에이즈 백신이 좌절된 상태에서 공장만 짓겠다고 하니 의혹의 눈초리가 이어졌다.업계 안팎의 비난에도 서 회장은 2005년 3월 공장을 완공했고 3개월 뒤 다국적제약사 BMS와 류마티스 관절염치료제 오렌시아의 위탁생산(CMO)를 체결했다. 자신을 사기꾼이라 비판하는 이들에 대해 반격에 나선 셈이다.

이후 5년 간 셀트리온은 CMO 사업으로 635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빠르게 성장했다. 어렵게 만든 공장이 아시아 최초로 FDA 승인을 받으면서 CMO 사업은 본궤도에 올랐다.

서 회장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서 회장은 과거 에이즈 백신 실패에 대한 미련이 있었다. 회사가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CMO 사업 대신 바이오시밀러에 집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셀트리온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항체치료제인 '렉키로나주'에 대한 허가 심사에 착수했다고 29일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2009년 셀트리온은 BMS의 CMO 사업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후 3년 간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 연구에 집중했다. 공매도 세력의 공격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램시마가 글로벌 임상시험 단계에 들어가자 셀트리온은 2011년 말부터 2년 간 공매도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전체 거래량의 30%가 공매도를 차지할 정도로 많았다.

계속된 공매도 공격에 서 회장도 지쳤고 결국 지분 매각을 선언했다. 공매도 세력과의 싸움에 질렸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서 회장은 "불법 공매도 세력에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해 기업 운영 자금에 써야 할 수 천억원을 자사주 매입 등에 쏟아부었다"며 "그러나 탐욕스런 투기 세력을 막아내기에 부족했다. 이제는 물러나려 한다"고 했다.

서 회장을 붙잡은 건 세계 최초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다. 램시마가 그해 8월 유럽에서 허가승인을 받자 공매도 공격은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후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소를 비롯한 각국의 규제기관이 램시마의 효능을 인정하면서 셀트리온은 또다시 도약했다.

바이오시밀러 승승장구…바이오베터에 항체치료제까지

서 회장은 허쥬마, 트룩시마 등 다른 바이오시밀러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셀트리온을 급속도로 성장시켰다. 동시에 미래 먹거리로 바이오베터 육성을 시작했다. 바이오시밀러가 기존 신약을 복제한 것이라면 바이오베터는 효능과 투여 횟수 등을 개선한 고수익 제품이라 할 수 있다.

셀트리온은 올 초 정맥주사(IV) 형태인 램시마를 피하주사(SC) 형태로 개량한 바이오베터(biobetter)를 개발해 판매를 시작했다. 올 3분기 램시마 SC 매출은 전분기보다 2배 가까이 늘면서 미래 먹거리로 자리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연 매출 1조원을 넘어선 셀트리온이 올해 1조86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존 제약 빅5(유한양행 GC녹십자 종근당 대웅제약 한미약품)를 제치고 올해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매출 1위에 올라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주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7일 코로나19 치료제 관련 소식이 전해진 뒤 셀트리온 3형제는 줄곧 상승세다. 증권가에서는 셀트리온의 목표주가를 최대 45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셀트리온제약과 셀트리온헬스케어 주가는 이달 들어서만 30% 넘게 올랐다.

김형수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셀트리온은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시장을 개척한 업체로 바이오베터를 개발·완료해 매출과 수익성을 크게 높일 것으로 보인다"며 "고수익을 실현하며 성장 중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사진=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서 회장의 마지막 목표는 코로나19 항체치료제의 성공적인 출시다. 셀트리온은 코로나19 항체치료제 CT-P59의 글로벌 임상 2상을 완료해 전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조건부 허가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동시에 미국과 유럽의 긴급사용 승인 획득을 위한 절차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서 회장은 31일 계획대로 일선에서 물러난다. 다만 공식 직함은 코로나19 환자 투약이 이뤄지는 내년 3월 주총까지 유지된다. 셀트리온은 주총에서 후임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셀트리온 관계자는 "서 회장은 이달 말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내년 3월 등기이사 명부에서 빠지기 전까지는 회장 타이틀을 유지한다"며 "코로나19 항체 치료제 출시까지는 공식 회장으로 역할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이후에는 무보수 명예회장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윤진우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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