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가을 - 곽은영(1975~)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어느덧 풍경의 닳은 모서리가
보이기 시작할 때
풀벌레 소리가 잔잔할 때
전화를 하려다 풀벌레 소리를
더 듣고 싶어질 때

시집 《관목들》(문학동네) 中관목들의 잎사귀가 닳고 있습니다. 사실은 닳아가는 것이 아니라 물들고 있는 것이지요. 관목숲 풀벌레들의 울음이 힘찹니다. 풀벌레들이 나뭇잎에게 색을 입히는 모양입니다. 문득, 색을 입히고 닳아가는 울음통을 생각합니다. 풀벌레들도 제 울음통이 벌게질 때까지, 이 색을 입히는 노동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문득, 친구에게 전화통화를 하면서, 공원을 걷는데 풀벌레 울음이 잔잔합니다. 그 울음을 더 보고 싶네요. 울음으로 색을 입히는 저 풀벌레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처럼 곧 동면에 드는 것도 있겠고, 울음으로 죽는 것도 있겠네요. 오늘은 풍경의 닳은 모서리가 잘 보입니다.

이소연 시인(2014 한경신춘문예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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